같은 꿈
익명

민규는 어디를 가나 튄다. 딱히 무슨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남보다 머리 하나는 큰 키에 어떤 옷이든 옷태가 살아 멋있어 보인다. 게다가 사람 좋아하고 매너도 좋고 잘생겼다. 다들 민규가 사람이 좋다고 난리였다. 본인도 다 나를 좋아해 주고 챙겨주고 알아봐 주면 좋지 뭐 하면서 사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친한 형들이 여기저기에서 민규를 부르려고 안달이었다. 같은 과도 아니었지만, 김민규를 보고는 다들 환호했다.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고는 제일 끝에 자켓들 속에 파묻힌 조그만 머리통을 발견했다.

 

 

"누구예요?"

 

 

"아 순영이. 얘가 술도 약한데 안 그래도 피곤했을거라서. 이따가 알아서 깰 거야"

 

 

이 시끄러운 곳에서 잘도 자네. 누군지 몰라도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순영이 스르륵 일어나서 다시 대화에 끼기 시작해서도 모르는 얼굴이 생겨서 의문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금방 시선을 거뒀다.

 

 

뭐야. 누구냐고 물어보지도 않네

 

 

오히려 민규가 순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렇게 귀엽게 생겼으면서, 무심한 눈빛이. 하지만 다른 형이 부르면 바로 시선이 또르르 굴러가서 풀린다. 웃긴 얘기라도 나오면 눈이 사르르 사라진다. 그 눈빛에 사로잡힌 거 같았다. 민규는 저 눈빛이 나에게도 향했으면 하고 바랐다.

 

 

 

 

 

 

"아 나 이제 가야 해. 꼭 오라고 해서 조금 마셨으니까 잡지마라~"

 

 

"어 순영아 조심히 가!"

 

 

민규는 저도 내일 일 있어서 일찍 가봐야 한다며 누가 잡을세라 급하게 뛰쳐나왔다.

 

 

 

 

 

"저기... 순영선배! 괜찮아요? 나 알아요?

 

 

"알지 모델과 김민규. 내 취향은 아닌데, 잘생기긴 했네"

 

 

순영의 시선이 살짝 위를 향한다. 살짝 발그레해진 볼을 붙잡고 눈 딱 감고 미친 척 고백했다

 

 

"에이, 잘 좀 봐봐요. 난 형보고 반한 거 같은데 저랑 만나볼래요?"

 

 

순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실 코트를 입었음에도 가려지지 않는 피지컬이 마음에 들었다.

 

 

"...너 내 모델할래?"

 

 

이게 무슨 대답인가 싶지만, 순영의 집요한 눈길이 셔츠 사이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아 괜히 가슴을 더 폈다.

 

그래 얼굴이든 몸이든 다 김민규인데 하나라도 마음에 들었음 됐지 뭐.

 

 

 

 

 

 

 

분명 다른 때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얘기하지 말라며 딱 잡아 거절했을 텐데 순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민규를 집까지 데리고 온 이 상황이 내가 보기에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일단 집에 데리고 온 김에 자세히 봐야지.

 

 

"옷 좀 벗어봐 치수 좀 재게"

 

 

민규는 상의를 벗고 순영이 치수를 다 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선 팔을 들어 머리 뒤로 깍지를 끼더니 말한다.

 

 

"어때요? 자세히 보니까 좀 다르죠?"

 

 

"어. 완전. 만져봐도 돼?"

 

 

이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고 끼 부린 건 아니었는데 완전 먹혔다. 순영은 눈을 빛내며 대답을 듣기도전에 가슴이며 어깨며 만져댔다.

 

 

"와 생각한 거보다 더 단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가슴이 크지?? 나도 이렇게 키울 수 있나?"

 

 

쫑알대며 온 몸을 주물럭거리는 순영의 빨개진 귀와 목을 내려다보던 민규는 순영이 아까 좋아한다는 말에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그도 지금 마음이 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형도 만만찮거든? 뒷목은 또 길쭉하니 예쁜데 정수리도 귀엽고 귀도 귀여워"

 

 

"내가 너보다 나이 많거든? 왜 자꾸 귀엽다고 해!"

 

 

"귀여우니까 귀엽다고 하지. 형이 너무 내 취향이라"

 

 

순영은 민규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점을 보고는 코 끝을 살짝 만졌다. 그리고서는 코에 쪽 뽀뽀했다.

 

 

"...너는 점도 있네. 이쁘다."

 

 

"형이 먼저 허락한 거다? 이제 못 말려 너."

 

 

민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순영의 입술을 잡아먹었다.

 

 

 

 

 

 

 

막 일어나서 부스스한 머리와 부은 얼굴을 한 순영이 민규가 김치와 계란밖에 없던 냉장고 재료로 만든 볶음밥을 먹고 감탄을 했다.

 

 

"와... 진짜 맛있다. 너 요리도 잘하는구나?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하는 건가"

 

 

민규는 당황해 새빨개졌다가 이내 순영의 입을 틀어막고 품속에 집어넣었다.

 

 

"악! 이형 못 하는 말이 없네. 일어나자마자 그러면 나 힘들어"

 

 

입술에 딱 붙은 손에다가 쪽 뽀뽀를 한 순영은 만족스럽게 빵싯 웃었다.

 

 

 

 

 

 

 

처음만난 날부터 순영의 집에 온 둘이었기에 사귀고 나서는 매일같이 서로의 집에서 함께했다. 순영이 늦게 들어올 때가 많아 조금이라도 편하라고 민규가 순영의 집으로 갈 때가 많았다. 

 

순영이 바쁠 때는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거나, 작업만 했기에 생각보다 물건도 많이 없고 깨끗한 집이었다. 그러다 보니 민규의 취향인 물건들도 늘어나고, 배달 음식보다 함께 밥을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아져 냉장고도 꽉꽉 채워졌다. 둘은 관심사도 비슷해 같이 전시회를 보러 다니기도 하고 가끔 자전거 산책도 나갔다.

 

 

 

[형 언제 끝나? 데리러 갈까?]

 

[나 늦게 끝나는데ㅠㅠ]

 

[뭐 어때 어차피 순영이네 갈 건데 뭐. 같이 가면 내가 더 좋지!]

 

[알았어! 나도 힘내서 빨리 끝낼게! 늦었으니까 먹고 싶은 거 미리 시켜놔~]

 

 

 

"뀨! 나 오늘 진짜 힘들어써ㅠㅠ"

 

잔뜩 지친 순영이 하는 투정을 들으면서 같이 집으로 가는 길이 내가 힘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행복을 속삭이는 것도, 힘들 때 안아줄 수 있는 것도 이런 게 행복이구나 마음이 벅찼다.

 

 

 

 

 

어느날 순영이 민규에게 "넌 이런게 잘 어울려"라며 내민 반지가 그대로 둘의 커플링이 되었다. 생일도 기념일도 아닌 날에 아무렇지 않게 내민 반지는 사실 순영이 민규가 인기가 많은 게 불안해 사 온 반지였다. 

 

 

"역시 형 아닌척해도 내 생각 엄청  하고 있구나"

 

 

고마워고마워 쪽쪽 이쁘다 우리 수녕이

 

 

갑자기 생긴 이벤트에 감동을 한 민규는 본인도 같은 반지를 사와 일할 때 불편해 손에 아무 액세서리를 안 끼는 순영을 위해 목걸이로 선물해주었더랬다.

 

 

 

 

 

 

 

 

 

주말엔 느지막이 일어나 넓은 소파에서 거실에서 TV를 보거나, 데이트를 나갔다. 민규 키에 맞는 넓은 소파임에도 순영은 민규 무릎에 앉아서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런 순영을 보다가 민규는 순영의 귀에 속삭였다.

 

 

"순영아 우리 같이 살까?"

 

"왜?"

 

"어차피 같이 자는 날도 많고, 집에 왔을 때 반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거 같지 않아? 형도 곧 직장도 들어갈 텐데 내가 옆에 있어야 챙겨주지"

 

"음 그렇긴 한데 우리 둘이 스타일이 다르니까... 난 지금도 좋은데"

 

"나도 그냥 우리 집이 더 넓으니까 해본 말이야."

 

순영이 고민도 안 하고 바로 거절하는 거 같아 민규는 내심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순영을 더 꽉 끌어안고 등에 얼굴을 비비기만 했다.

 

 

 

 

 

 

 

*

 

 

순영이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작업실에만 박혀있던 날이었다. 민규는 순영이 옷 작업을 할 때면 반짝이는 눈이 좋았지만 본인을 좀 챙겨가면서 하기를 바랬다. 문자를 보내도 영 답장이 없어서 걱정된 민규가 그냥 찾아갈까 하다가 순영이 싫어할까 봐 전화부터 했다.

 

 

 

"어 민규야 왜?"

 

"형! 아직도 해? 밥은 먹고 하는 거야? 잠깐 나올래?"

 

"나 바쁜데 나중에!"

 

"형 며칠째 제대로 안 먹고 잠도 못 자잖아, 그러다 쓰러져"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순영에게 꿈이 중요한 거야 잘 알지만, 본인이 더 중요한 거 아닌가 몸 좀 잘 챙겼으면 했다

 

"형 매번 괜찮다고만 하지 말고 좀 들어주면 안돼? 잠깐 쉬고 하면 더 잘 될 수도 있잖아. 형 생각해서 그러는 건데."

 

"알아. 아는데 나는 집중 깨지면 더 안돼서 그래. 내 생각을 해주는 거 고마운데, 나도 내 스타일이 있어."

 

 

안 맞는 부분이 많은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유독 마음에 남는 날이었다.

 

 

민규는 언제까지고 순영과 함께 하고 싶었고 환경이 달라지고 서로 더 보기 힘들어진대도 서로가 힘이 되어주면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순영이 하고 싶은 일과 나, 둘 중에 택해야 하는 날이 오면 나를 고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생겨났다.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린 순영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일정이 다가오기에 일단 눈앞에 일에 몰두했다. 그리고 끝내자마자 민규집으로 달려갔다. 작업실에서 꼬박 밤을 새우고 벌써 아침이었다.

 

 

 

"많이 기다렸겠다 민규. 빨리 가야지"

 

 

자고있을 줄 알았던 민규는 방에 앉아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민규야 나왔어"

 

 

민규가 잠긴 눈으로 빤히 쳐다보자 순영도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저 입에서 무슨 얘기가 나올지 문득 겁이 났다.

 

 

 

"형... 우리 시간을 좀 갖자. 요즘 바빠서 그런 건지 형 마음에 내 자리가 빠져버린 건지 잘 모르겠어. 나는 형이랑 미래도 계획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형이랑 같이 있는 미래를 그리는 게 잘 안돼"

 

 

 

사실 최근 작업에만 몰두하다 보니 민규에게 많이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 민규를 많이 좋아하는데 너를 생각하며 바쁜 하루하루를 버텼는데. 내 마음을 너가 못 느꼈다면 그건 진심이 아니었던 걸까? 내 일방적인 마음으로, 힘들어하는 너를 붙잡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미안해"

 

 

 

민규의 손바닥에 올려진 반지를 빤히 보던 순영은 민규가 반지를 내밀까 바로 뒤돌아나 뛰쳐나왔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아직 집에 민규의 흔적도 많았고 반지도 여전히 목에 걸려있는데도 너가 이제는 없다는 게 온기가 없는 집에서부터 느껴졌다. 분명 너와 내가 있는 집은 항상 뜨거웠는데 너무 추웠다.

 

 

일주일정도의 시간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옷만 붙들며 살았지만 사실 순영은 점점 뭘 만들고 싶은 건지도 생각이 안 났다. 민규를 생각하며 만들던 옷들이 주인을 잃었다.

 

 

아직 헤어진 거 아니잖아. 나한테 아직 기회가 있을까? 만약 생각해봤는데도 안되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제대로 쉬어주지 않은 몸에서는 쉬어달라며 열을 내뿜고 있었다. 병원에 갈 힘도, 가고 싶지도 않아 집으로 왔지만, 더 이상 집은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침대가 이렇게 컸나... 보고 싶다...

 

 

'추워...' 이불을 끌어와 안고 옆으로 누웠다. 이러니까 좀 낫네. 민규 안으면 따뜻한데... 이 상태로 잠들면 꿈에라도 찾아와줄까? 스르르 눈을 감았다.

 

 

볼이 서서히 젖어갈 때쯤 창밖에 별 하나가 반짝거렸다.

 

 

 

 

 

 

*

 

 

나는 민규의 품에서 눈을 떴다. 나를 안고 자는 민규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순영아 깼어? 더 자지. 요즘 계속 야간작업했잖아"

 

 

"응 졸려. 근데 너 보고 싶어서 눈이 안 감기네"

 

 

"앜 그게 모야. 내가 계속 꽉 안아줄 테니까 눈 감아도 돼."

 

 

"진짜? 그럼 사라지지 않겠다고 약속해"

 

 

 

 

 

 

 

다시 눈을 떴을 때 민규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고, 손에 낀 반지가 반짝거렸다.

 

 

"형 일어났어? 뭐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김치찌개 끓이는데 괜찮아?"

 

 

"응! 난 우리 민규가 해주는 거면 다 좋지"

 

 

"원래 김치라면 환장하기는 하지만 뭔가 이상한데? 많이 힘들었구나 순영이"

 

 

"응응 나 요즘 힘들어서 충천해야 돼 안아줘"

 

 

"나의 사랑을 갈구하는 권순영 짱 좋다. 귀여워 이리와!!"

 

 

후다닥 달려와 나를 안아 주는 너의 품이 너무 좋았다. 그리웠고 따뜻했고 아팠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왔다.

 

 

 

"어어 갑자기 왜 울어. 그렇게 먹고 싶었어?"

 

 

"민규야 있잖아. 저번에 너가 같이 살자고 했잖아. 괜히 바쁘다고 핑계를 댄 건 너 나 귀여워서 좋아한다며 나는 안 그럴 때가 더 많으니까. 집에서 예민하고 지저분하고 이런 나보고 싫어지면 어떡해?"

 

 

"권순영 내가 언제 너 귀여워서 만난대? 너라서 만나는 거지. 뭐 그런 생각을 했대 우린 싸워도 얼굴 보면 풀리잖아. 난 그냥 힘들 때 안아주고, 매일 아침 일어나서 굿모닝 뽀뽀도 해주고 싶었어."

 

 

"항상 웃어주는 너라서 착한 너라서 말 안 해도 내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나 봐. 또 나만 생각했네!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그럼 형, 이 꿈에서 깨면 나한테 한번 달려와 줄래?"

 

 

 

 

 

 

 

 

*

 

 

울면서 잠에서 깬 순영은 바로 민규에게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어지러웠지만 민규에게 가겠다 마음을 먹고 나니, 힘이 났다. 대충 모자로 얼굴만 가리고 문을 여니 민규가 순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돼서 그냥 내가 왔어 형"

 

 

"민규야 내가 너무 늦었지. 보고 싶었어"

 

 

 

민규의 품에 파고든 순영은 차분하게 미안하다고, 아직 많이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었지만 민규를 보자 다시 터져 나온 울음 때문에 말이 잘 안 나왔다.

 

 

"나... 진짜..너 못 보니까 죽을 거 같았어. 불안하게 해서 미안해. 나는 그냥 너랑 자주 부딪힐까 봐, 우리의 다름이 서로를 힘들게 할까 봐 무서웠어."

 

 

"알아. 진심 아니었던거... 나도 빨리 연락 못해서 미안해. 형이 어떤 생각을 하는 중인지 몰라서 나도 무서웠거든... 이대로 헤어질까 봐."

 

 

"내 꿈에 이제 너도 있고, 너가 있어야 나도 빛나. 그러니까..."

 

 

"긴말 필요 없어 순영아. 나는 그냥 사랑해 그 한마디면 돼."

 

 

울다가 푸흐흐 웃은 순영은 민규에게 소리쳤다.

 

 

"뀨 내가 진짜 많이 사랑해! 너의 미래에 계속 있고 싶어!"

 

 

"그럼 그럼. 내 옆에 권순영 없는 거 나도 싫어. 형 열난다 빨리 약 먹자. 나 때문에 귀여운 볼 다 사라졌네"

 

 

"안아줘. 너랑 있으면 따뜻해서 빨리 나을 거 같아"

 

 

순영이 민규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두 손을 꽉 마주 잡은 채 잠들었다. 민규는 잠든 순영을 침대에 눕히면서 생각했다. 꿈처럼 서로에게 닿은 이 마음을 잘 지키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