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핀 지하방의 어린왕자
홀리

 

 

 

 

 

 

 

형은 별에서 왔어,

난 지구에서 왔고.

 

내가 멀어진다면 형은 날 찾을 수 없겠지.

그래도 난 형이 행복했으면 해.

 

이 우주 안에서 우린 행복하게 각자 살아가는 거야.

나 찾지 말고... 잘 지내.

 

 

 

 

 

 

 

음성 메세지를 삭제하시겠습니까?

 

음성 메세지가 삭제되었습니다.

 

 

저장된 음성 메세지가 없습니다.

 

 

 

 

 

 

 

 

 

 

 

곰팡이 핀 지하방의 어린 왕자

w. 홀리

 

 

 

 

 

 

 

 

 

 

 

 

연예인 일반인 남자친구로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십 년 전의 김민규에게 찾아가 너는 나중에 저 아역에서 시작해 은하계 대스타가 된 권순영의 유일무이한 L-O-V-E가 되고, 개같은 이별을 맞이할거라 말하면 믿을 수 있을까.

 

우주대스타 호시. 이름을 모르면 어디 다른 평행 세계 사람 취급을 받는 호시. 감미로운 발라드부터 격한 비트의 댄스까지, 장르고 뭐고 가리지 않는 호시. 그의 본명인 권순영을 아는 것은 오직 그의 아이돌 시작부터 함께한 매니저와 소속사 사장, 그리고 그의 애인 김민규 뿐이었다.

그 권순영은 지금 평범하게 애인에게 차인 한 사람에 불과했다. 대뜸 연습실로 날아들어온 종이 비행기, [잘 지내] 세 글자 덜렁 적어둔 글씨는 민규의 것이 분명했고 숙소에서 두 시간은 날아야 갈 수 있는 집으로 우주콜택시 부르기에 충분했다. 택시 안에서 아기자기한 편지지에 담긴 꾹꾹 눌러 쓴 세 글자 위로 눈물을 툭툭 떨어트렸다. 만약 내가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널 잡을 수 있을까. 우리 처음 만났던 지구에서의 게릴라 버스킹 날로 돌아간다면,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널 팬으로라도.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우는 손님이 처음인가요. 보이지도 않으시겠지만. 주먹 입에 물고 눈물 뚝뚝 흘리던 권순영은 좌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 위로 날아다니던 선글라스로 퉁퉁 부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 두 눈을 감추고 운전석 문을 열어 기사에게 다가갔다.

 

“기사님 저희, 지구로 갈 수 있을까요.”

 

어디로 가야할지는 내가 정한다. 갑작스런 장기 항해 요청에 기사는 통역기 켜는 것도 까먹고 순영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 순영이 꺼낸 지폐 다발에 비장한 눈으로 고갤 끄덕였다. 택시는 근처 우주정류장에 멈춰 채비를 마치고 곧바로 목적지를 재설정했다. 

안전하게 시간을 돌리는 방법은 아직 연구 중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더 늦기 전에 행하면 된다. 어느 날 콘서트에서 봤던 [꽉 잡아줘 풀악셀 호시] 플랜카드를 떠올리며 눈에 힘 가득 들어간 권순영은 결심했다. 민규를 붙잡으러 가기로.

 

 

 

 

 

긴 항해를 끝내고 김민규는 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한참 전에 떠났던 터라 키우던 화분들은 바싹 비틀려 흙 위를 기고 있었고 걸어뒀던 설거지를 마친 그릇 위로는 곰팡이가 스멀스멀 피어있었다. 바닥엔 급하게 나간다고 벗어던진 채 나뒹구는 실내화 한 켤레와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를, 그리고 언제 죽었는 지도 모를 벌레의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와, 진짜 미치겠네. 우주로 떠나있던 기간이 꽤나 길었던 게 그제야 체감이 됐다. 남자 하나에 미쳐 뒷 일 생각 안 하고 대뜸 날랐던 제가 우스울 지경이었다. 민규는 권순영의 이름을 질겅질겅 씹으며 엉망이 된 집을 하나하나 뜯어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곰팡이 핀 그릇들을 개수대에 담가 뜨거운 물을 세차게 틀었다. 보일러가 아직 끊기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구남친이 된 우주 대스타 호시와 달리 평범한 이십 대 청년 김민규가 가진 재산이라곤 9평 남짓한 반지하 방 하나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2년의 계약 기간 중 두어 달 남은 게 다인 자그마한 전세방. 요즘 뒤늦게 통수 맞는 전세 사기가 그렇게 많다던데, 보증금 절반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은 아슬아슬한 동네였지만 민규는 그 곳을 사랑했다. 본디 깔끔한 성격이라 오래 비운 것 치곤 깨끗한 편이었지만 쌓인 시간의 흔적은 무시할 수 없었다. 반지하 치고 녹빛이 찬란했던, 화사했던 집은 회색의 때가 잔뜩 묻어있었다.

 

“아이고, 내 새끼들...”

 

학기 중 알바를 병행하며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자던 때에도 짬 내서 물 주러 들리고 온 마음 다해 소중히 키웠던, 호시에게 이끌려 우주로 떠나던 순간에도 유일하게 눈에 밟히던 소중한 내 자식들. 그나마 해가 잘 드는 곳에 줄지어 있었던, 싱그러운 초록빛이었던 친구들을 종량제에 던져넣고, 미니 청소기에 꽉꽉 들어찬 먼지 덩어리까지 비우고 나서야 내내 굽히고 있던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민규는 식탁 의자에 주저앉았다. 깔아둔 방석에선 풀썩 하며 먼지가 들뜨는 소리가 들렸다. 잘 가, 내 새끼들아. 너희와 함께한 시간들 정말 소중했어. 꽃을 피울 시기에 제 삶이 꽃을 피운다 착각해서 그 자식을 따라간 내가 등신이지. 소매로 먼지 쌓인 테이블을 대충 훔치고 푹 엎드렸다.

헤어진 슬픔은 새로운 사랑으로 덮는 거라고, 새 식물이나 들여볼까 하던 찰나에 둔탁한 현관 벨소리가 띵동- 울렸다. 이어서 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까지. 민규는 생각했다. 권호시 진짜 개 또라이 새끼.

 

“김민규 씨, 우주경찰청에서 나왔습니다. 김민규 씨!”

 

김민규는 경찰에 신고할 권순영을 예상했던 터라 침대 맞은편에 둔 작은 텔레비전도 책상 한 켠에 늘 자리한 라디오도, 순영이 바꿔주려 할 때마다 한사코 거절했던 사방팔방 흠집이 난 채 정이 들어버린 구형 아이폰도, 소리가 날 만한 그 무엇도 켜지 않았다. 바깥에서 문을 쾅쾅쾅 부서져라 쳐대든 말든, 민규는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채 숨을 죽였다. 우주로 나가기 전 빚쟁이들을 피해 자주 했던 몸짓이었다. 그거 뭐 좋은 기억이라고, 이런 상황에서조차 옛 생각이 나는 제가 우스워졌다. 조금씩 요동치는 심장 위로 손바닥을 지그시 누르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고향에 계셨을 부모님과 어딘가에 아직 살아있는 지도 모르겠는 제 누이, 그리고 아마도, 저를 찾아다닐 권순영. 권호시. 우주 대스타 호시.

 

“하아...”

 

단단히 홀렸었다. 하필 벽지에 핀 곰팡이는 그가 있던 성운이라며 보여준 사진을 닮아있었다. 그 동그란 모양을 손가락 끝으로 덧그리곤 다시 이불로 눈을 덮었다. 가리기라도 해야 그가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감은 두 눈 뒤로 계속해서 맴도는 결국 김민규는 그에게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던, 그와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리게 되었다. 다시는 잊히지 않을, 어쩌면 꿈만 같던 그날들을. 밖엔 여전히 문을 두드리는 정체 모를 이가 있었고 창문 너머로는 때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불쾌한 소리를 덮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때는 2017년, 연초부터 별똥별 쇼가 벌어진다고 떠들어댔던 그 하늘 아래 그해 여름에 김민규가 중간고사 말아먹고 나와서 혼자 포장마차나 가려고 걸음을 옮기던 순간에, 하필 그날 권순영이 콘서트에 가까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김민규는 인파로 가득한 거리를 주파하던 그 자세 그대로 그 자리에 얼어버리고 말았다. 사람의 몸짓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반짝이는, 그 자체로 빛이 나는 그의 무대에 오감을 빼앗긴 듯.

 

“지금까지 호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민규가 그 자리에 어정쩡한 자세로 한 시간 넘게 서 있는 후에야 무대는 막이 내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호시의 무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호시는 혼자서 무대를 장악했다. 백댄서 하나 없이 사람들로 둘러싸인 둥근 바닥을 종횡무진하며 빛으로 가득 채웠다. 그가 스친 발자국마다 빛이 나고 흩날린 머리칼에서 떨어진 땀방울에선 광채가 반짝이는 것 같았다. 대형 플랜카드 하나 세워놓았던 비좁은 바닥이 사람들에겐 돔형 콘서트장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가 있지. 때는 우주 너머로 사람이 넘어가 산 지도 백 년 후, 이미 우주 사회 공동체가 생긴 후였다. 김민규는 생각했다. 호시에겐 어떤 블랙홀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그게 사람들을 홀리는 게 확실하다고. 인파가 해산하고도 한참을 그곳에 서 있던 김민규는 멀리서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밴에 막 올라탄 순영은 끝까지 제껴진 의자 위로 풀썩 드러누웠다. 역시 호시였다, 지금 은하 포털 검색어 1위다, 직캠 뜬 거 보실래요? 와 이런 곳에도 직캠이 뜨네. 등 쉴 새 없이 종알대는 매니저에게 엄지손가락 하나 올려 보이고 색색, 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두 시간 내내 토크 없이는 좀... 힘들죠? 멋쩍게 웃는 소리 뒤로 커튼이 쳐지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빛이 차단되고 나서야 호시는 눈을 뜰 수 있었다.

최근 게릴라 콘서트를 했던 다른 행성들보다 중력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하는 지구라, 같은 스텝을 밟아도 끝에서 끝으로 가는 시간이 체감 상 더 길게 느껴졌다. 그걸 감안해서 이번엔 버스킹 수준에서 그쳤다고 해도, 그게 어디든 무대를 대충 얼버무리는 건 호시가 아니라며 중력을 거스르며 돌바닥 위를 컨버스 덜렁 신은 채 날아다녔더니 온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팔다리를 주무르다 길게 기지개를 켜고 눈두덩이를 손바닥으로 꾹꾹 눌렀다. 이제 다음 앨범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말 휴식이다.

미약하게 들리는 엔진 소리 속에서 까딱이던 손가락이 불현듯 휴대폰을 집어 들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꽉 닫힌 창문을 확인한 뒤 마침내 연결 된 전화 너머로 입을 열었다.

 

“어, 원우야. 나 사람 하나만 찾아주라.”

 

그렇게 우연을 가장한 계산된 만남은 호시가 지구에 있을 때 신속하게 이뤄졌다.

 

 

첫눈에 홀딱 반한 민규를 손 위에 올려놓고 물량 공세로 살살 굴려 먹다가 오히려 더 깊게 빠져든 것은 호시 쪽이었다. 그의 오피스텔에서 이루어진 비밀 데이트라던가, 프라이빗한 룸을 자랑하는 고급 식당, 인적이 드문 영화관 등에서 몰래 만남을 이어가는 동안 한 여름에 만들어진 눈사람처럼 순식간에 녹아버린 제 마음에 당황했으나, 호시는 본디 두려워하는 법을 모르는 범우주급 아이돌이었다. 타고난 깡과 수년 간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집념과 뚝심으로 김민규를 한 스푼씩 떠먹었다. 맞닿은 손끝에 흐르는 전류가 동일해진 시점 먼저 고백한 건 호시였다.

지구를 떠나는 마지막 날, 넓고 황량한 오피스텔의 킹사이즈 매트리스에서 맨몸으로 눈을 뜬 민규는 제 옆에 누워있는 순영의 뺨에 입을 맞추며 가슴께를 데우는 행복을 느꼈다. 그를 골목에서 다시 마주친 순간 느꼈던 운명을 더듬으며 우주라는 유리병 속 아늑하게 둘이 함께 영원히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반짝이는 장미를 위해 유리병 안을 비집고 들어간 어린 왕자처럼 아득한 미래를 꿈꾸는 대신 당장의 현실에 감사하고 있었다.

며칠 째 들어가지 못했던 제 반지하 자취방에 들어가서도 꿈만 같던 그 며칠을 곱씹었다. 호시는 우주로 떠났지만 여전히 제 곁에 있듯 그의 싱그러운 향수 냄새가 주위를 맴돌았다. 민규는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발치에 둔 휴대폰이 징징 울리는 것도 모르고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순영이 형: 나 이제 출발]

[순영이 형: 다음주에봐 민규]

[순영이 형: ㅋㅋㅋㅋㅋㅋ]

[순영이 형: 잘자용♥]

 

잠든 민규의 손에선 호시의 것과 같은 반지가 반짝였다. 민규는 그날도 별의 꿈을 꾸었다.

 

 

 

 

 

 

 

 

 

 

김민규가 지구로 도망쳐버린 후로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눈을 감았다 뜨기만 했을 뿐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번져있었다. 피로가 쌓인 탓에 얼굴도 난리가 난 건 매한가지였다. 이러다 아이돌 짤리는 거 아냐. 푸석한 뺨을 쓸다 중력 없이 방방 떠다니는 머리 위로 비니를 푹 눌러썼다. 입가를 대충 훔친 호시는 커튼을 열고 운전기사의 옆으로 걸어갔다.

 

“얼마 남았어요?“

”아.“

 

기사는 옆의 기계를 조작하더니 대답했다. 현재 좌표 312:58:038:996, 두 개의 행성을 지나면 지구로 가는 포탈이 있습니다. 포탈을 통과하고 나면 곧장 달이었고, 제가 기억하기로 달에서 지구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기사에게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간이 침실로 돌아왔다. 왼쪽 가슴 위로 손바닥을 지그시 눌렀다. 불안함에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김민규를 찾고 나면 뭘 할 수 있지. 뭘 해야 하지. 돌아와달라고 빌까.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으면 봐줄 사람이던가. 일단 그의 집 안에서 전처럼 얌전히 기다릴까. 하지만 만약 그새 집을 옮겼다면?

이 광활한 우주를 거니는 시간은 지구의 시간으로 짐작이 가능했지만, 포탈을 지나고 나면 시간선이 종종 뒤틀리곤 했기에 지구의 시간이 얼마나 흐를 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최근 우주 포털 이상으로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뉴스가 매일같이 뜨고 있었다. 그렇다고 안전한 길로 돌아가기엔 순영의 마음이 일분일초를 견디기 어려웠다. 심장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고 입술은 바짝 말랐다.

 

주시하던 스크린을 꺼버린 순영은 고개를 푹 떨궜다. 포탈이 잘못되어 만약 몇십년 후 미래의 지구에 도착하게 된다면, 그때 민규가 지구에 없다면. 순영은 숨을 죽여 불안을 흘려보냈다. 우주선은 순조롭게 은하를 가로지르며 포탈로 향하고 있었다.

 

 

 

 

 

 

 

 

 

빨간 머플러를 두른 어린 아이가 민규에게 다가와 말한다. 형, 장미꽃을 그릴 수 있어요? 민규는 대답한다. 그럼, 당연하지. 민규는 흔쾌히 스케치북을 받아들고 그림을 그려주었다. 스케치북을 돌려받은 아이는 가는 눈을 끔뻑이더니 그를 다시 올려다본다. 이 상자 안에 장미꽃이 있나요? 민규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대답한다. 이 안엔 호랑이가 있어. 말을 뱉자마자 민규는 이상함을 느낀다. 아이가 그려달라고 한 게 호랑이였던가? 상자에 난 구멍 속 얼룩은 호랑이 또는 얼룩말일 것이 분명했다. 검은 머리의 아이는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당황한 민규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려다, 스케치북이 흔들리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 그림 상자의 뚜껑이 열리며 커다란 솜발이 튀어나온다. 얼룩과 발톱이 마구 뒤엉켜있다. 어느새 민규의 앞엔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경계하듯 서 있었고, 입을 벌려 민규의 머리를 삼키려.

 

 

“으악!“

”아, 환자분 깨셨어요?“

 

아직 마취 안 풀리셨으니까 삼십 분 후에 집에 가시면 되세요. 높낮이 없는 상냥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하얀 천장과 막 켜지는 조명, 제가 누워있는 좁은 침대까지. 그제서야 제가 병원에 있음을 판단하에 인지할 수 있었다. 아 맞다. 나 내시경 검사했지. 최근 속이 답답하고 불편해서 냉큼 병원에 달려왔던 것을 떠올리는 것에 성공했다. 그나저나 마취 이거 좋네. 잠깐 잔 건데도 몸이 개운했다. 무슨 꿈을 꾼 것 같긴 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이십 육 분을 가리키는 타이머를 보던 민규는 그대로 쓰러져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아, 이 침대 집으로 가져가고 싶다... 라는 생각은 얼마 안 가 까맣게 잠에 휩쓸렸고.

 

“으... 와, 개운하다.”

 

결국 타이머가 울리고도 뭉개던 민규는 차갑게 쫓겨났다. 하지만 기분은 오히려 상쾌했다. 정육점과 생선 가게가 나란히 붙어있는 동네 시장을 걸으며 그새 뻗친 머리를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며 저녁 메뉴를 고민했다. 별 다른 이상 없이 순전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으니 오늘은 기름과 매운 것은 패스하고... 오랜만에 밥버거나 갈길까. 슬리퍼 직직 끌며 투박하게 움직이던 발걸음이 천천히 멈췄다.

 

저 멀리 제집 빌라 앞에 노란 테이프가 덕지덕지 둘려 있었고 주위엔 적지 않은 인파가 저마다 웅성거리고 있었다. 경범죄? 강도라도 들었나? 혹시 도둑이 든 게 제집이라면, 가장 비싼 재산인 노트북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그가 남기고 간 반지였다. 그게 당근에라도 올라오면 진짜 큰일인데! 세간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저보단 우주 아이돌인 호시가 훨씬 위험했다. 도망치던 날 놓고 온다는 것을 까먹었던 저 자신의 멍청함에 주먹을 꽉 쥐었다. 주변에 있을 경찰을 급하게 찾던 도중 저마다 떠드는 목소리가 귓가에 박혔다.

 

”... 래도... 블랙홀이 있으면 건물 무너지는 거 아냐?“

”블랙홀 아니라던데?“

”포탈인지 뭔지, 우주 것들은 이래서...“

”아 나 호시 콘서트 재방 봐야 하는데...“

 

”학생, B01호 살아요?”

 

사람들 사이에 우뚝 선 채 상황 파악 중이던 민규의 앞으로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다가왔다. 뒤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주목되었다가 금세 흩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곁눈질로 민규와 남자를 흘긋댔다. 그들이 주목이 신경 쓰인 남자는 민규에게 옆 골목을 눈짓하며 앞장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국과수일까 나사일까. 그의 뒤를 따라가는 민규의 머릿속엔 질문이 가득했다. 더불어 찔리는 구석 또한 적지 않았다. 매니저에게 몰래 택시를 부탁해서 (호시의 카드로) 지구로 돌아왔던 건데 그 과정이 적법하지 않았다던가, 제 몸에 저도 모르는 이상이 생겨있었다던가.

 

골목 끝에 다다르고, 검은 봉고차의 문이 열리는 순간. 긴장으로 다시금 뒤틀린 속이 쿵, 떨어지는 감각을 받았다.

 

”...!“

 

한껏 눕혀진 좌석 위로 창백한 안색의 순영이 눕혀져 있었고 그의 곁엔 익숙한 얼굴의 매니저가 조용히 하란 제스쳐를 들어 보였다. 입을 틀어막던 민규는 차에 올라타 문을 닫았다. 고글을 쓴 남자는 문밖을 지키고 서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민규는 매니저와 눈을 마주쳤다. 매니저는 한숨을 내쉬곤 입을 열었다. 호시가 그쪽 집 앞에 쓰러져 있었고 옆엔 포탈이 열려있었다고. 불안정한 포탈이라 지금 조사 중인 거라고. 다행히 발견한 사람은 호시를 모르는 주인집 어르신이었고 호시의 뒤를 따라오던 매니저가 곧장 도착해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하며 다시 깊은 숨을 쉬었다.

 

“아마 지구로 오는 동안 포탈에 문제가 있었는지, 호시한테 이상이 있던 건 맞는데 확실하진 않대요. 시간선이 뒤틀려 있었던가, 아니면, 그냥 물리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던가.”

“...”

”... 둘이 진짜 헤어진 거 맞죠?“

”네? 네, ... 네.”

 

동시에 내려다 본 호시의 목엔 여전히 반지가 걸려있었다. 애처롭게 매달린 주제에 상황을 비웃듯 전과 같은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민규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속으로 욕을 삼켰다. 미친놈아, 나랑 그렇게 개같이 싸우고 헤어졌으면서 왜 콘서트 끝나자마자 여길 찾아와. 못해도 일주일은 족히 항해를 했을 것이었다. 누워있는 호시는 간간히 움찔거릴 뿐 아무런 반응도, 말도 없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인근 행성에 있던 주치의에게 먼저 연락해두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순영이 갈 곳을 예상해 미리 자리하고 있던 주치의가 달려오고 있단 말에 작게 안도했으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눈꺼풀이 떨릴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매니저가 잠시 주치의를 데리러 간 사이, 시트 끄트머리에 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차갑게 식은 두 손을 부여잡은 채 민규는 기도했다. 제발, 이 지독한 성질머리를 가진, 안하무인 제멋대로인 권순영에게 아무 일도 없게 해주세요,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우주신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온통 새카만, 암흑 뿐이었다.

 

포탈을 통해 빠르게 지구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민규의 집을 찾는 것까진 문제 없었다. 익숙한 골목을 지나 반지하 문 앞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 앞에 뒹구는 택배 상자 위엔 김*규라 적혀있었다. 그의 집 비밀번호가 아직까지 제 생일이길 바라며 도어락을 여는 순간,

 

!

 

깜빡이는 조명은 그대로 꺼져버렸다. 잡고 있던 문고리는 어느샌가 검은 무언가로 뒤덮여 있었다. 아차, 포탈을 지나치며 일그러졌던 시간선이 여기서 문제가 생길 줄이야. 검은 구 속에 빨려 들어간 손끝이 무감각했다. 그리고 그대로 권순영은,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저와 함께 불시착한 외계 물질에 흡수당했다.

 

 

 

 

 

암흑 속을 수영했다. 숨이 쉬어지고 제 몸이 아직 성한 것을 보면 완전히 우주로 내쫓긴 것은 아니었다. 볼 수 없었지만 그리 짐작했다. 어떤 것도 보이질 않고 그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오직 머릿속만 바쁜 채 떠 있으려니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이곳에 시간이 존재하긴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눈을 감고 느린 심호흡을 백 하고도 서른 여덟 번을 지나가는 시점에 제 앞을 지나가는 타오를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부서진 별일까. 슬며시 올라가는 눈꺼풀 안으로 멀어버릴 것 같은 빛이 강하게 닿아왔다. 이번에도 순영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행히 이번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제가 정신을 잃었던 시간을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주변에 서 있던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비명을 지르고 있었기에.

 

땅이 있었고, 빛도 있었다. 여전히 호흡할 수 있어 순영은 그곳이 지구일 거라 짐작했다. 돌아온 걸까, 하며 주위를 둘러본 순간 그것이 틀린 생각임을 알 수 있었다.

 

”누, 눈 떴다. 괜찮으세요?“

”아티스트 님, 겨, 겨, 경찰, 부를까요? 앰뷸런스? 아씨, 스케줄 늦었는데!”

 

바닥에 드러누운 채 그대로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닥치는 대로 다녔던 신인 시절, 다른 행성이며, 멀게는 다른 은하까지 출장을 다닐 때마다 특별 우주 항법과 온갖 과학적이고 기이한 현상들의 예시를 들었던 탓에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눈부신 태양 추정 항성을 팔로 가리며 제게 안위를 묻는 남자를 쳐다봤다.

정확히는, 평행 지구의 권순영을.

 

“... 정신이 안 드시나 본데, 예인 씨. 물, 안 깐 거 있나?”

“다 뚜껑에 빵꾸 뚫려있는데... 어, 어! 일어난다!“

”오, 저기!“

 

평행 세계의 권순영 옆에 평행 세계의 김민규가 있었다. 그것만으로 순영은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고, 그런 제가 곧 우스워졌다. 흙을 탁탁 털던 순영은 다른 권순영을 쳐다봤다. 거울이 아닌 것으로 보는 제 얼굴은, 교육 때에도 예시를 들으며 생각한 거지만, 기분이 묘했다. 특히 화려한 셔츠와 알 수 없는 안경이 제일.

 

”... 저, 여기가 어딘가요.“

“봐, 외지인 같다니까. 어디, 납치당하셨나? 여기 세봉리예요. 아셔요?“

”절 모르는 걸 보니 어쩌면, 외계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티스트 님.“

”응, 이 조을호를 모르는 걸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

”아뇨, 저요. 저 말이에요 아티스트 님.“

”응 시끄러.“

 

흥미로운 둘의 만담에도 웃거나 즐길 시간은 없었다. 가장 최근 들었던 교육 속 사례가 뭐였더라, 포탈은 닫히지 않고 근처에서 찾을 수 있으나, 시간선이 원위치로 돌아오면서 닫히게 된다고 했던가. 쉽게 생각하면 시간이 없다는 말이었다.

순영은 감사를 표하고 제가 떨어진 곳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다행히 포탈은 코앞에 있었다. 저를 삼켰던 커다란 암흑 구체와 똑 닮은 형태로 쓰러져있던 나무 위, 가장 꼭대기에 있었다. 순영은 생각했다. 아이돌 해서 참 다행이라고. 별걸 다 시켰던 옛날 예능 속 그 언젠가 나무를 타게 시켰던 기억을 더듬어 순영은 거대한 느티나무를 올랐다. 제게 말을 걸었던 두 사람이 (스케줄에 늦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안 가고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 순영을 보며 쑥덕이는 게 들려왔다.

 

바닥부터 못해도 3미터에 가까운 나무를 단숨에 오른 탓에 팔과 뺨이 생채기와 잔가지들로 더럽혀져 있었다. 괜찮아, 요즘 의학 좋아. 흉만 안 지면 된다고 생각하며 순영은 굵은 가지의 끝에서 팔을 뻗어 검은 구체를 쥐었고, 순식간에 구체에게 잡아먹혔다.

눈 앞에서 순영이 사라지자 민규를 닮은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순영을 닮은 남자는 안경을 닦았다. 훗날 둘은 이 이야기로 모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순영을 삼켰던 암흑은 또 다시 어딘가에 순영을 뱉고 근처를 배회했다.

 

 

 

 

 

이번에 눈을 뜬 곳은 익숙하지만 다른 곳이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연습생 시절 거의 눌러살다시피 했던 초록색의 연습실이었다. 아마 그건 십 년도 더 된 기억일 텐데. 잠시 연습실 벽에 그어져 있는 수많은 아이들의 성장 흔적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안에 제 이름이 있을까, 빤히 보던 찰나에 저 멀리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순영이 형! 빨리 오라니까, 요!“

 

오늘 청소 당번이 어쩌구, 가위바위보가 어쩌고. 궁시렁거리며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어린 민규가 분명했다. 입을 벌릴 때 보이는 송곳니 하며 연애할 때 잠깐 보여줬던 사진과 똑같은 머리 스타일과 그 장난기 넘치는 눈이 그러했다. 순영은 반사적으로 거울이 붙어있을 벽면을 바라봤다. 거울 속엔 어린 민규와 영문을 모르는 저 자신, 그리고 저 멀리. 창고의 문을 열고 나오는 앳된, 작은 순영.

 

길어진 팔다리를 주체하지 못하듯 어기적 걸어오던 어린 민규는 저를 보자마자 손에 든 농구공을 떨어트렸다. 작은 민규와 마주친 순영도 마찬가지로 멋쩍은 표정을 지었으며, 이 상황에서 의연한 건 의외로 어린 순영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야 김민규. 인사해야지.”

“어, 와,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 그래, 안녕, 얘들아.”

 

우와, 귀신인 줄 알았다. 제 가슴팍을 쓸어내리며 어린 순영에게로 종종 달려가는 어린 민규가 있었고, 이미 훌쩍 키 차이가 나는 그의 등 위로 팔을 둘러 토닥이는 어린 순영이 있었다. 먼지 하나 없는 연습실에서 일어나면서도 습관처럼 바지를 털었고, 텅 빈 연습실 속 아이들의 얘기 소리는 자연스레 귓가에 파고들었다. 저 분이 새 피디님이신가 봐. 카메라 불 들어와 있지, 봐. 와, 그러게요 형. 형 진짜 눈이 좋네요. 내가 눈만 좋냐. 가볍게 투닥거리는 그들을 보며 순영은 다시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순영은 자연스럽게 카메라 뒤에 섰다. 각도를 조정하듯 알지도 못하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아이들은 한층 자연스러워진 모습으로 중앙을 찾아 서성거렸다.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두 아이의 모습에 가슴께가 간질거렸다.

 

“농구공 어디서 났어?”

“이거 저기 운동장에 굴러다니던 거 주워 왔어요. 형 기다린다고 다 모여있어요. 빨리 가요.”

“어, 나 손만 씻고.“

”어차피 더러워질 텐데 뭘...“

 

저를 흘끔 보고 구석에 있는 문으로 걸어가는 어린 순영의 근처에서 검은 안개가 기웃거렸다.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농구공을 튕기는 어린 민규를 바라봤다. 만약 민규를 이때 만났더라면, 민규도 배우가 아닌 아이돌의 꿈을 꿨다면 이랬겠구나.

제가 있는 현실에서의 민규는 배우가 꿈이었던 청년이었다. 학원에 다녔던 얘기 하며, 길거리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았었던 까마득한 과거의 이야기까지 함께 누운 침대에서 조잘조잘 얘기하곤 했었다. 그것이 과거형이 된 이유는 역시, 현실이란 벽의 문제였다. 꿈을 좇아 달리기엔 지나치게 나이를 먹었다고 자조하던 김민규.

 

미래를 향한 기대로 반짝이는 눈을 가진 소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순영의 고개가 점점 내려갔다. 눈치를 살피던 작은 민규가 그에게로 걸음을 떼던 순간, 저 멀리서 어린 순영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피디님. 여기 엄청 큰 벌레 나왔어요!”

“뭐야? 바퀴벌레? 으!”

“김민규 넌 나가 있어.“

 

까칠한 말투는 별일 아니란 듯 넘긴 민규는 정말 농구공을 품에 안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뒷모습을 보던 순영은 웃음을 삼켰다. 벌레 싫어하는 건 어릴 때에도 여전했구나. 어린 순영이 함께 그 뒤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쟤는 덩치도 산만한 게...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었다.

순영은 아이가 부르는 곳으로 다가갔다. 어린 순영이 문을 열어주었고, 나름 긴장하고 있던 순영은 걸음을 덜걱, 멈추어 섰다. 화장실 한 가운데에 크게 떠 있는 검은 구체는 제가 찾던 것이 분명했다. 어린 순영을 바라보니 그는 제 뺨만 멋쩍은 듯 긁적일 뿐 다른 이야기를 구태여 꺼내진 않았다. 정말... 그대로 컸구나, 난. 똑같은 자세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피디님 아닌 건 알았는데, 괜히 얘기하기... 좀... 귀찮아서요.”

“뭐가? 아, 민규한테.”

“걘... 하긴, 그렇긴 해.”

 

그리고 곧장 떠나려 했다. 구체는 미세하게 점차 줄어들고 있었고, 아마 저것이 사라지면 순영은 꼼짝없이 이 지구에 갇히게 될 것이었다. 어린 자신에게 고맙다 인사를 전하고 걸음을 떼려던 순간 소매를 붙잡는 작은 손길이 느껴졌다. 머뭇거리던 아이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제게 물었다. ... 저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형은... 데뷔했어요?“

”응?“

“그러니까, ...”

 

아이는 입을 우물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순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옛날 어느 토크쇼에서의 질문이 떠올랐다. 미래 또는 과거로 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때 순영은 아마 그렇게 대답했었다. 지금에 과분할 정도로 많은 행복을 느끼고 있지만, 가능하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연습생 시절의 자신에게, 넌 해낼 거란, 그 말 한 마디를 해주고 싶다고.

 

“했어. 그리고 엄청 잘나가.”

“...”

“그러니까 너도 할 수 있어.”

“진짜요?”

“그럼.”

 

넌 또 다른 권순영이니까. 입 밖으로 뱉지 않은 말 또한 전해진 듯, 사춘기 소년의 눈빛이 생기를 얻었다. 숨겨지지 않는 벅찬 마음 탓에 어린 순영은 숨을 골랐다. 볼과 귓가는 발갛게 상기되었고, 이제 막 변성기를 지난 미성이 여즉 떨리고 있었다.

굽혔던 무릎을 펴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작은 주먹을 꽉 쥐고 순영을 올려다봤다. 별이 가득한 그의 두 눈 덕분에, 이 지구의 별빛은 하늘색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제가 데뷔하면, 형도 알 수 있어요?”

“음... 아마 모를 걸.”

“아...”

“그래도, 어. 넌 그럴 거야. 그렇게 기억할게.”

 

우주에 속한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였지만 순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머릿속엔 조금 더 성숙해진 순영과 민규가 함께 있는 그림이 그려졌다. 순영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구체의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검정으로 가득한 세계로 떠나는 순영을 보며 아이는 구체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얼마 안 가 순영과 민규가 함께 데뷔조에 든 것은, 오롯이 그들이 일궈낸 것이었다. 한참 뒤 민규는 그날 귀신을 봤다며 멤버들에게 이야기했지만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순영 조차도.

 

 

 

 

 

눈을 감고 도달한 내부엔 여전히 질량도, 중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부디 이 암흑을 건너 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곳에 민규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느샌가 나타난 작게 빛나는 밝은 구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구체가 저를 뱉어냄과 동시에 강한 중력이 작용하는 것을 느꼈다. 무엇인가가 잡아당기는 듯한 기분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검푸른 빛, 아래엔 희게 빛나는 무언가.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세차게 불고 있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 나 떨어지는 중이구나.

그 옛날 어디선가 했던 번지점프가 생각났다. 세차게 뛰어올라 공중에 잠시 부유했던 상쾌한 기분이 지금과 같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비행의 끝에 자신이 어떻게 되어있을 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지상을 향해 솟아오르는 느낌. 두 팔을 뻗어 넓은 상공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드넓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소리와 저 먼 우주가 움직이는 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메우던 때에, 앳된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별, 저거 별인가?“

 

순영은 반사적으로 지상이 있을 곳을 내려다봤다. 아직 까마득히 멀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빨간, 그러나 헤진 목도리를 칭칭 동여맨 새까만 머리의 아이.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키를 가진, 점점 커지는 별의 꼬리를 바라보며 눈을 빛내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별똥별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자리에 우뚝 선 아이는 얼른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꼭 모았다. 새하얗게 눈이 내린 땅 위로 아이만이 하나의 점처럼 다가왔다. 제 소원이 별의 귓가에 닿도록, 아이는 큰 목소리로 소원을 빌었다.

 

‘미래에는 꼭,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해주세요.’

 

 

말이 끝나는 순간, 순영의 머릿속으로 모든 기억이 필름을 되감듯 빠르게 지나갔다. 늘상 따르기만 하던 회사에 제 의견을 피력해 자신이 처음 이 지구에, 그것도 커다랗지 않은 무대에 서게 된 이유. 처음으로 누군가의 뒷조사를 했던 것도,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이은 것도, 그 누군가를 속여가며 그의 곁에 있으려고 했던 것까지.

 

 

모든 행동엔 단 하나의 이유만이 존재했다.

한참을 날아도 춥지 않던 뺨을 타고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행복하게 해주겠다던 결심을 지키지 못한 자신이 밉게만 느껴졌다. 펑펑 흘린 눈물은 하늘로 흩어졌고, 뿌옇게 번진 시야 너머로 검은 구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향해 팔을 길게 뻗었다. 순영은 흐릿해졌던 별의 꿈을 반짝이도록 다시 꺼내어 닦았다. 그에게는 해야 하는 일이 꼭 있었다. 해야만 하는 말이 있었다. 곁을 떠나지 않는, 어린 왕자를 위한 장미가 되어줄 순 없더라도 그가 발을 디딘 땅이 차가운 곳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기꺼이 그의 따스한 별이 되어주고 싶었다.

암흑은 그를 집어삼켰고 순영은 눈을 감지 않았다. 두 눈을 뜬 채 암흑을 맞이했다. 온갖 색채와 빛들이, 수많은 시간선과 은하가 뒤섞인 통로 안에서 순영은 우주를 향해 소원을 빌었다.

 

제게 마지막 기회를, 민규를 만나게 해달라고.

 

 

 

 

 

 

민규를 향해 내리던 별빛은 크게 반짝이더니 어디론가 모습을 감췄다. 어린 민규는 발갛게 달아오른 코를 훌쩍였다. 추위가 서려 촉촉해진 눈은 한참이나 별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파랗게 맑던 하늘에선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민규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흰 눈밭 위에 발자국을 새겨가며, 오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꿈을 꾸기 위해 작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커피는 역시 싸제 알커피에 프림이지. 브라질 산 원두니 뭐니, 그런 거 몰라도 다 잘 먹는 민규에게도 기호도는 존재했다. 커다란 머그잔에 알커피 티스푼으로 두 번, 뜨거운 물을 붓고 개별 포장된 프림을 하나 까 넣는다. 설탕도 있으면 딱 좋은 믹스 커피 맛이 나겠지만 이 허허벌판인 병실에 커피포트 하나 가져오는 것만으로 진을 다 뺐다. (사실 매니저님이 넣어줬다.) 집에서 수세미로 박박 닦아온 깨끗한 포트에 물을 받아놓고 병상 옆 의자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것 또한 하나의 여유이지 않을까. 극한의 상황에서도 좋은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민규의 성질은 이런 때에도 어김없이 빛을 발하고 있었고, 거북이 등딱지처럼 커다란 가방 속에서 필기 노트를 꺼내어 손에 들었다. 한 손에는 프림 커피, 한 손에는 공부하는 (공)책이라니. 개 멋진 현대인 같군... 아직 손에 커피는 없었지만. 제법 까리한 무드를 즐기며 이해하지 못할 소리가 빼곡히 적힌 노트를 한 장씩 넘기던 민규는 1분 만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와 큰일 났네... 시험 어떻게 치냐.”

“기말 언젠데?”

“일주일 뒤에 시작인데, 아~ 완전 망했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던 민규는 노트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커피포트의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긴 팔다리 늘려가며 기지개 쭉 켜던 민규는, 별안간 단말마와 함께 바닥으로 꺼지듯 쑥 쪼그라들었다.

 

 

“와씨 뭐야 깜짝이야!!!!!!!!!!”

“아이씨, 야. 귀 아파. 귀신 봤냐?”

“깼으면 깼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아!!! 아, 나 심장 멈춘 것 같애. 아오 진짜, 권순영!!!!”

 

나름 범우주적 비밀인 본명을 외쳐놓고 제 입을 틀어막는 민규를 보며 순영은 눈을 가늘게 뜨곤 그보다 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김민규, 또 민규하는 걸 보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순영은 지그시 눈을 감고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지압했다.

 

“너 방금 그거, 매니저 형 귀에 들어갔으면 벌금 3억 냈어야 해.”

“아이씨, 안 걸렸잖아... 형 근데 몸 괜찮아? 머리는 좀 어때? 의사 선생님 불러?“

”대답할 틈 좀 줄래?“

”아, 미안.“

 

둘 사이에 정적이 찾아오자 방금까지의 일이 우습게 느껴질 만큼 기류가 달라졌다. 헛기침을 하고 순영의 옆에 앉았다 아 맞다, 커피. 하며 엉덩이가 닿기도 전에 일어난 민규나, 대놓고 민규를 보지도 못하고 곁눈질로 사삭, 사삭 소리가 나도록 눈만 굴리는 차인 사람, 순영이나. 그럼에도 이 기류는 필시 희망적인 기류였다. 민규가 순영을 신경 쓴다는 것 만으로 순영은 속으로 쾌재를 외치고 있었다.

 

“... 그, 나 얼마나 누워있었냐.”

“어? ... 지금 딱 서른 일곱 시간. 좀만 더 늦었어도 형 저기 얼음방 들어갈 뻔했어”

“아, 그래.”

 

아마 민규가 말하는 얼음방은 급속 냉동이 이뤄지는 방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저편에 있는 기억에서 들었던 것도 같았다. 의식만 우주를 떠돌게 될 때 어떻게 되는지. 나 까딱하면 캡틴 호시 될 뻔했다, 야.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으허허 웃는 소리, 견디기 힘든 정적은 다시 찾아왔다.

공간을 떠다니는 무소음에 민규는 뜨거운 커피를 덥석 삼켰다가 쏟아져나오는 기침을 참느라 얼굴이 새빨개졌다. 자연스레 등을 두드리려 일어나던 순영은 온 몸이 비명을 지르는 탓에 억, 소리를 내며 풀썩 다시 쓰러졌다. 허공을 바라보던 둘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눈을 마주쳤다. 픽 웃는 순영과 귀 끝이 빨개진 민규는 또 서로 뒤통수를 보였다.

 

“... 왜 왔어. 그래서.”

“... 뻔하지 않냐. 알면서 묻네.”

“그니까 왜, 하... 왜 그랬냐고. 권호시 이 멍청아.”

“이게 형한테 멍청이라고.”

“아 형. 됐냐, 형아.”

 

말을 할수록 댓발 튀어나오는 주둥이를 감출 생각도 없었다. 눈치 백단, 험하고 험난한 이 지구에서 이십 몇 년 살아온 김민규가 정말 이유가 몰라서 물었을까. 순영은 민규와 다른 눈칫밥으로 맥락을 읽을 수 있었다. 오히려 오래 자다 깬 것 처럼 정신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손을 뻗어 축 늘어진 민규의 손등을 툭 건드렸다. 불에라도 닿은 듯 화악 놀라는 민규 탓에 조금 민망해졌지만, 금세 고개를 돌리며 못이기는 척 손을 내어주는 민규였다. 순영은 두터운 손을 주무르며 생각했다. 이런 데에선 묘하게 연하 티를 낸다고.

 

“우리 민규 잡으러 왔지.”

“...“

”나 너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하려고.“

”형은 무슨, ...“

”민규야, ...잠깐, 야, 너 울어?“

 

새빨개진 목덜미가 여전히 귀엽다는 생각을 하다가 불쑥 들리는 코 먹는 소리에 순영은 고통도 잊고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비로소 눈높이가 비슷해지고 나서야, 순영은 민규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황했다. 제가 어떻게 할 지는 계획이 대충 세워졌지만 그 속에 민규가 운다는 선지는 없었다. 아직도 뻐근한 눈꺼풀이 크게 열렸다. 순영의 머릿속은 대충 이러했다. 와, 씨. 좆됐나.

 

”형은.“

”어, 어.“

”형은... 다 쉽지?“

 

어디선가 들어본 대사였던 것 같은데, 식으로 생각이 흘러가기 직전 끄트머릴 잡아 당기는 데에 겨우 해냈다. 잡은 두 손에 힘이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순영은 입 안쪽 살을 세게 씹었다. 금방이라도 아프다고 방정을 떨게 될까 봐.

 

”형 나는, 씨발.“

”씁.“

”아 좀 봐주라고 이럴 때는! 형 내가, 무슨 생각으로 형 따라가고 형한테 헤어지자고 했는지 알기나 해? 생각해본 적이나 있어? 여기가 어디라고 냉큼 따라오긴 따라와, 형 여기 사람도 아니잖아. 진짜로 잘못됐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나 때문에 권호시 죽었다는 기사 나면, 아니, 오는 길에라도 유턴할 수 있었을 거 아냐! 우리 헤어진 지 두 달이 넘었는데!! 난 다 잊고 살아가려고 하는데 형은, 씨발 너는 그동안 날아왔다는 거 아냐!!“

 

그간의 서러움을 토해내는 민규의 앞에서 순영이 할 수 있는 것은 딱히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잡은 손을 슬며시 놓았다. 물론, 민규가 곧장 다시 잡아 오는 바람에 그런 연기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형 내가 제일 좆같은 게 뭔지 알아? 나 형 따라간다고 다 버리고 갔잖아, 근데 형 보자마자 든 생각이, 아, 나는.”

“... 민규야,”

“형 따라서, 또, 다시, ... 형 따라서 갈 것 같다는 거였어.”

 

말이 끝나고 한동안 침묵이 자리했다. 이전과는 다른 침묵이었다. 순영은 입을 다물기를 택했다.

민규가 제게 들려준 것은 비단 이번 일 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김민규가 떠나온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겨우 일궈낸 작은 보금자리, 본인의 힘으로 온전히 들어간 학교와, 그를 지탱해주던 수많은 사람들, 결국엔, 그의 작은 별을 뒤로한 채 내민 손을 잡아 온, 이 순간에도 손을 놓지 못하는 어린 지구인에 불과한 그를.

 

”... 야, 민규야...”

 

헤어지기 직전, 순영은 스케줄이 밀려오고 있었고 나름대로 그를 신경 쓴다고 한 거였다. 투어를 가는 행성으로 민규를 몰래 데려가기도 했고, 콘서트를 비롯한 작은 스케줄까지 전부 끝나면 민규에게로 달려갔다. 그럴 때마다 민규는, 저를 기다리다 우주 항해 멀미 탓에 잠들어있던 게 대부분이었다. 강아지처럼 색색 잠든 민규의 등을 토닥이다 곁에서 잠든 게 전부였었다.

기껏 우주로 나온 민규에게 해준 건 그게 다였다. 번듯한 행성 외곽에 자리한 넓은 집과 개인 우주 택시 기사, 제 카드까지 쥐여줬지만 민규는 항상 저만을 기다렸다. 딱 한 번 집을 떠나 산책을 하다 우주 미아가 되어 행성 전역에 사이렌이 울려 퍼졌던 그 후로 자진해서 집에 틀어박혀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그가 가진 것은 순영이 제게 쥐여준 것 말고는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민규는 이 넓은 우주에서 고독을 느꼈고, 그래서 순영을 떠났다.

 

잡은 손이 다시금 떨려오기 시작했다. 민규는 얼굴 위로 번진 눈물을 닦고 있었다. 진동이 시작되는 지점을 거슬러 올라보니 순영이 고개 숙인 채로 흐느끼고 있었다. 민규는 역시나, 언제나 그랬듯. 빈손에 힘을 한 번 꾹 쥐었다가 순영의 머리를 감싸 제 품으로 당겨주었다.

 

“... 형, 네가 왜 울어.”

”...”

“아이씨... 울지 마!”

 

다시금 터진 눈물샘에 불어 터질 것 같은 민규의 얼굴 아래로 비슷하게 불어버린 순영의 머리통이 놓였다. 가슴팍에 얼굴 묻고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삼켰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은 제 슬픔이 아니라, 제게로 나눠진 민규의 슬픔이었다. 일그러지는 입가를 꾹꾹 억눌러봐도 별 효과는 없었다. 그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둘 사이로 파고들었다.

 

“호시 혹시 일어났, 어!”

“형... 의사 선생님 좀 불러 주세요...”

“어, 어... 근데 둘이 좀 떨어져 있어, 알겠지? 금방 갔다 올게!”

 

항상 제 연예인 옆에 붙어있던 녀석이 눈물 뚝뚝 흘리며 말하니 별수 없었다. 보아하니 순영도 울고 있는 것 같았고. 승관은 이 미친 매니저 일을 그만두리란 다짐을 지구력으로 올해에만 서른 한 번째 곱씹으며 지나가던 간호사에게 달려갔다.

 

 

매니저가 떠나고 나서야 울음이 조금씩 갈무리되었다. 이제 둘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승관이 병원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순간 민규는 저와 떨어져야만 했고, 짤막한 인터뷰 후엔 아마도 순영은 제가 있던 곳으로 끌려갈 것이었다. 사장에게 죽도록 깨지는 것보다 민규와 헤어져야 한다는 게 더 두려웠다.

병원복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질러 닦은 순영이 잠긴 목소리로 민규를 불렀다. 마찬가지로 푹 잠긴 목소리를 한 민규가 순영의 눈가를 마저 꾹꾹 눌러주며 대답했다.

 

“민규야, 나는... 무대의 별이잖아.”

“...지금까지 들어놓고 그런 말 하고 싶냐, 너는?”

“아니 들어 봐.”

 

순영의 인생엔 수백 대의 조명과 수천 만의 불빛, 광활한 우주 무대 위로 떠다니는 수십 대의 중계 카메라, 저를 향해 빛나듯, 또는 제가 내는 빛을 반사하듯 주변을 메운 별빛이 다였다. 과분한 사랑을 받는다 말하면서도 사랑을 받기 위해, 더 빛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순영의 인생의 전부였다. 그런 순영에게 나타났던 어린 민규의 목소리는, 순영에게 절대 잊을 수가 없는, 평생 무엇을 하더라도 번복할 수 없을 단 한 번의 기회이자 제 또 다른 꿈이었다. 어린 민규의 소원은 이미 이뤄졌대도 제가 소원을 다시 빌면 그만이었다.

까맣게 쳐진 블라인드 뒤로 반짝이는 유성이 길게 떨어지고 있었다. 민규의 손이 떨어지려는 순간 손을 가로채 제 가슴팍 위로 얹고, 지그시 눌렀다. 뛰는 박동이 그에게 전달되길 간절히 바라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에, 순영은 입을 열었다.

 

”민규야. ... 집에 가자.“

 

 

순영의 뒤로 별이 크게 반짝였다. 시선을 빼앗겼던 민규는 그에게 잡힌 제 손을 바라봤다. 살갗을 타고 넘어오는 박동, 어둠을 등진 곳에서도 별처럼 빛나는 눈에 민규는 다시금 넋을 잃었다. 처음 그를 봤던 순간이 겹쳐 보였다. 무대에서 빛나던 그는 여전히 제 앞에서 빛나고 있었고, 그의 말 안에는 제가 딛고 설 수 있는 힘이 담겨있었다. 민규는 그를 당겨 입을 맞췄다. 언제 들려올 지 모르는 노크 소리보다 심장 소리가 커서 듣지 못할 것처럼 둘의 박동이 요란하게 떠들고 있었다.

 

“... 미안하다고는 안 해?”

“... 그때 화내서 미안.”

“변명은?”

“이제 와서 해서 뭐하냐.”

 

픽 웃는 순영의 이마 위로 입술을 눌렀다. 따끈하게 퍼진 온기에 저도 웃음이 나왔다. 양손으로 그의 뺨을 쥔 채 두 눈을 마주 바라봤다. 별빛이 박힌 채 찌그러진 눈가가 퍽 귀엽다고 느껴졌다. 눈꼬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이번에는 민규가 입을 열었다.

 

“... 나만의 별이 되라고는 안 할게. 근데.”

“응.”

“내 별인 걸 잊지는 마, 권순영.”

 

 

그 말 마저 민규답다고 생각했다. 마냥 어린 줄만 알았던 민규가, 제법 어른스러운 말도 할 줄 안다며 순영은 민규의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아, 진짜! 투덜대면서도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둘의 사이로 마침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까지 키스한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순영은 침대에 도로 누우려다 삐끗한 허리에 앓는 소리를 냈고, 민규는 의자를 뒤로 움직이다 벽에 팔꿈치를 박고 비명을 질렀다. 곧 들려오는 목소리에 상황은 2초 만에 종료되었다.

 

“얘기 끝나셨으면 들어갈게요.“

 

지친 눈 한 쌍, 그 뒤로 수많은 눈동자와 터지는,

어림잡아도 열 대는 족히 넘는 묵직한 렌즈의 플래시들까진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민규의 입장이었고 순영은 아픈 허리를 잡은 채로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민규는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꼈고.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지구에 위치한 한 대형 병원에서 의식 불명 상태에 놓여있던 호시 씨가 지금 막 깨어난 것으로...“

”호시 씨! 옆에 있는 남자는 누굽니까?!“

”호시 씨! 대우주경찰청 연구소에서 나왔습니다! 정말 블랙홀을 만진 게 맞습니까?!“

”호시 씨! 여기 한 번 봐주세요!“

”호시 씨! 여기 호랑해 한 번만 해주세요!“

”환자 분 안정 취하셔야 합니다!“

”거기 남자 분! 호시 씨와 정확히 무슨 관계인가요?!“

”호시! 호시야!“

 

비단 그것은 민규만의 예감이 아니었다. 기자단 앞에서 팔을 뻗어 가리던 승관은 스치듯 마주한 순영의 눈빛에 머리의 피가 쫙 말라버리는 감각을 느꼈다. 제가 알기론 저것은, 뭔가, 저지르기 직전의....

 

우주아이돌의 옆에서 존재감 없이 자리를 피하려던 민규의 손이 불시에 붙잡혔다. 그것은 다가온 의사, 간호사 선생님도, 문을 닫으려 애쓰는 승관의 손도 아니었다. 방금까지 느꼈던 따뜻한 순영의 손이 저를 끌어당겼다. 당황하며 바라본 순영은 수많은 카메라 렌즈 중 가장 각이 잘 나올 메인 캠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는.

 

 

”... ?!“

 

 

몇몇 이의 새된 비명과 찰나의 정적을 거쳐 미친 듯이 터져대는 셔터 소리의 중심.

 

호시의 곁을 지킨 지구인, 여태까지의 파파라치 사진 속 단 두 장 찍혀있던 수수께끼의 청년인 ’그‘ 와의 화끈한 키스로 우주 아이돌 호시는 공개 연애를 외쳤다.

 

 

 

 

 

 

 

 

 

 

 

 

 

 

 

 

 

 

 

 

 

 

 

안드로메다 성운 19:30:95:0808 번지 8번 사무실 속, 열 개의 대형 스크린을 가득 메운 다양한 각도의 입맞춤 사진과 그 속에서 축 늘어진 귀를 싸맨 채 주저앉은 너구리, 아니. 승철이 울부짖었다.

 

“... 권호시 개 또라이 새끼야!!!”

 

웅장한 데시벨에 스크린들이 속속들이 꺼졌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한 창은, 이렇게 쓰여있었다.

 

 

 

 

[연예TOP] “우주 아이돌” 호시... 지구에서 찾은 그의 “어린 왕자”와 사랑에 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