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두드리는 별님
루하

현관을 두드리는 주먹의 소리가 났다. 한밤중에 남의 집 현관을 두드려대는 주제에 나름 예의라고 초인종은 누리지 않는 것인지. 문밖의 누군가가 참 어이없었다. 

문을 열어줄 생각은 없었다.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없거니와 요즘같이 흉흉한 세상에선 아무리 백구십이 가까이 되는 장정이라도 사리고 사는 것이 방책이었다. 운동 좀 많이 하고 키 좀 크면 뭐해. 밖에 있는 사람이 칼 든 미친놈이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밖에 더해. 문밖의 미지의 인물은 술에 취한 취객 정도로 의심이 됐다. 전애인의 집이었던 곳을 찾아온 놈이라던가 이곳을 지 집이라고 착각하고 찾아온 놈이라던가.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했다. 그래도 산 사람을 저렇게 방치해도 되는가 하는 양심의 가책이 잠시 들었지만, 곧 스스로와 타협했다. 유월의 밤 날씨는 창을 열어두고 잠들기 딱 적당한 날씨니까. 조금 불편한 자세로 계단 어느 깨에서 잠들 청년을 애도하며 잘 준비를 했다. 내일 아침에도 저곳에 누워있다면 꿀물이나 한 병 놓아주고 가야겠다는 생각이나 하며.

 

민규야...

 

내 이름을 애닲게 부르는 그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진.

 

 

 

 

현관문 두드리는 별님

김민규 권순영

 

 

 

 

사람이 누군가를 망각할 때엔 목소리부터 잊는다고 하던가.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내가 그를 아주 티끌만큼도 잊지 못했다는 이야기의 방증일 테다. 몇 년 만에 듣는 그 목소리에 주저할 틈도 없이 머리가, 몸이, 그리고 심장이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머리가 핑핑 돌고 몸은 자꾸만 뚝딱였다. 몇 번이고 상상하고 떠올려보았던 이 순간의 감정과는 사뭇 달리, 심장은 평소보다도 느리게 뛰었다. 심장이 이리 느리게 뛰다간 곧 숨이 멎어 죽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 몸에 벌어진 이상 현상들을 고찰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난 이미 현관문 앞이었고, 도어락은 내 손 안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정적.

현관 센서등이 점멸한다. 아파트 계단 창문을 통해 드는 빛이 새된 어둠을 희미하게 밝힌다. 그 옅은 불빛으로도 나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것 없는 듯한 키. 쪽 빠진 통통하던 볼살. 새하얗게 물든 머리칼. 연한 빛으로도 나는 그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부타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다만 오래도록 그리던 사람의 온 모습을 전부 눈에 새길 뿐이었다. 흔적도 없이 한순간 사라졌다가 몇 년 만에 내 앞에 나타난 이 사람을. 권순영을. 그러니까, 내 첫사랑을.

 

얼마간 지속되었는지도 모를 오랜 정적 끝에 권순영은 내 품에 쓰러져 안겼다.

품에 안긴 권순영을 데리고 집으로 들었다. 신발을 벗기려 발을 살피는데 신발도 양말도 없이 맨발이다. 진짜 미쳤어? 다치면 어쩌려고 이러고 왔어. 상대방에게 전해지지도 않을 타박을 뱉었다. 침대에 축 처진 몸을 눕혔다. 힘이 다 빠져 쳐졌는데도 어쩜 이렇게 가벼워. 뭘 했길래 이렇게 살이 쪽 빠졌어. 마음 아프게. 혹여나 어디 다치기라도 했을까, 아픈 건 아닐까. 눈에 보이는 살덩이를 훑고 이마를 맞대보았다. 다행히 걱정하는 일은 없는 듯싶었지만, 권순영은 그냥, 좀 많이 지쳐 보였다. 머릿속을 부유하던 수많은 의문은 별빛을 받아 창백히 빛나는 얼굴 앞에서 제 자취를 감췄다. 일단 좀 재우자. 내일, 그게 안 되면 그다음 날, 그다음 날의 다음 날이라도 물어볼 시간은 많았으니까. 그때처럼 권순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따뜻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더러워진 발바닥을 조심히 닦아주었다. 희고 조그만 발바닥은 다행히 생채기 하나 없이 흙만 묻었을 뿐이다. 이걸 잘했다고 칭찬해줘야 하는 거냐. 중얼중얼 투덜거림을 뱉어도 이 모든 타박의 주인은 곤히 잠을 잘 뿐이다. 밖으로 비죽 튀어나온 발바닥까지 이불로 전부 덮어주곤 뒤를 돌아 방문을 향했다. 자는 얼굴이라도 한참을 내려다보고 싶은 충동적인 욕망을 꾹꾹 누르며 방문을 닫을 때쯤 얇은 목소리가 울렸다.

 

민규야... 가지마아...

 

그렇게도 듣고 싶던 목소리가 참 밉게 느껴졌다.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사람은 자기면서 나보고 가지 말라 한다. 나는 그 어디에도 간 적이 없는데. 봐. 나는 네가 혹여 몇 년이 지나고서라도 나를 찾아올까 봐 고등학교 때 살던 집에 아직도 살고 있는데. 대학까지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아직도 살고 있는데. 내가 가긴 어딜 가. 문을 아주 닫아버리진 않았고, 거실 큰 창으로 드는 검은 하늘의 별빛이 실낱같이 방안으로 들 정도로만 방문을 열어놓았다. 방안에 함께 있어 주지 않은 건... 그래도 아직은 권순영이 좀 미워서. 그래서.

 

 

 

 

 

 

권순영은 눈에 튀는 사람이었다. 인맥빨 말빨 얼굴빨로 학생회를 들어가 처음 마주한 선배는 그랬다. 학생부회장인 주제에 면접 때는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선배는, 그니까 권순영은, 유독 나에게만 모질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는 그렇게도 잘 보여주는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나한텐 코빼기도 안 비췄다. 그 얼굴만 그랬겠는가. 학생회 회의를 할 때도 다른 부원들의 의견은 그리도 잘 들어주고 한 마디에도 칭찬을 해주면서 내가 낸 의견 한 줄에는 열 마디 질책이 돌아왔다.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냐는 둥, 왜 이렇게 생각이 짧냐는 둥. 결국 투표를 하고 까보면 만장일치로 내 의견이 채택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니까 결국은 자기도 내 의견을 뽑을 거면서 그랬다. 선배는 내가 건네는 인사조차도 안 받아줬다. 분명 인사는 나랑 이석민 둘이 했는데 돌아오는 인사는 한 명을 향했다. ‘어, 석민이 안녀엉.’ 또 나한테만 안 보여주는 그 말랑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투명인간급으로 무시하기도 일쑤였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너 순영이 형한테 뭐 제대로 잘못했구나? 도대체 뭔 짓을 한 거야.’ 그렇게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그건 나조차도 궁금해 죽어가는 부분이었다. 잘못한 게 있어야 말이지.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어 고민에 고민을 해보아도 내려지는 결론은 없었다. 선배는 만난 첫날부터 나를 그리 대했으니까. ‘그냥 니가 꼴 보기 싫은가 보지. 형 마음에 안 든 거야 네가. 내가 너를 싫어하는 것처럼.’ 이석민이 옆에서 초 치는 소리나 하고 있어도 나는 그 와중에 이석민이 부러울 뿐이었다. 쟤는 권순영을 형이라고 부를 수 있어서. 권순영은 전교 후배 중 단 한 사람에게만 형이라는 호칭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나 김민규, 딱 하나한테만.

 

그쯤 미움받았으면 나도 똑같이 그쪽을 미워하거나 체념하거나 하는 쪽이 맞았을 테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하니까. 아마 평소의 나라도 그랬을 거고. 근데 이상하게 그게 안 됐다. 원체 사람을 좋아했고 사랑받는 걸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나라지만 나를 싫다고 대놓고 표하는 사람한테까지 그리 애정을 갈구한 적은 없었는데, 유독 권순영한테만 그랬다. 권순영이 유독 나에게만 모질 듯 나도 유독 권순영에게만 집착적이었다. 분명 내 안 어딘가에서 기인했을 그 이유는 당시 나조차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 집착적으로 따라붙으니 선배는 무시를 넘어서 나를 피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쯤에서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다다랐던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지를 모토로 달고 살아가던 나에게 권순영은 17년 인생 처음으로 떠넘겨진 난제였다. 모두가 사랑하는 내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잔뜩 사고 있다는 불편한 감정. 도대체가 그 미움의 이유조차 알 수 없는 혼란한 감정. 더해서 그런 불편한 감정을 잔뜩 떠안고서도 저 사람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나조차 엉뚱황당한 감정. 그렇게 감정을 정의하고 이 사람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내린 이후로는 더 오래 고민할 것도 없었다. 돌직구로 가기로 했다.

 

 

 

 

 

 

밤새도록 내 집안에 함께 존재하는 누군가가 믿기지 않아 몇 번씩이고 열린 문틈 새를 들여다보았다. 내 걱정의 주인은 하늘에서 내린 천사처럼 창으로 드는 별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도시의 한복판인데도 신기하리만큼 별이 잘 보이는 우리 집은 권순영이 밤을 보내기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다.

 

 

 

 

 

 

나를 부지런히도 피해 다니던 선배를 기어코 붙잡은 곳은 학교 5층 맨 끝, 비워진 다목적실이었다. 선배는 나의 손길을 열심히 뿌리치며 역정을 냈다. 꽉 붙잡고 있던 손목은 선배에게서 더 이상 달아나지 않겠다는 확답을 들은 뒤에야 풀어줬었는데, 그때 보았던 손목은 내 손자국으로 새빨갰다. 그게 뭐라고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안한 기억 중 하나다. 

‘뭔데.’ 낮은 음성으로 선배가 물었다.

분명 오늘 어디 한번 끝장을 봐보자는 심정으로 호기롭게 붙잡았는데 막상 입을 열라 방석을 깔아주니 말이 안 나왔다. 아마 그때까지 선배와 제대로 된 대화라는 걸 해본 적조차 없었던 탓이 아닌가 싶다. 그 시점으로 약 오 개월간의 학교생활 동안 선배와 나눈 대화라곤 대화라고 말하기도 멋쩍은 유치한 말싸움뿐이었으니. 잡기는 대차게 잡아놓고 우물쭈물 입을 못 떼는 나를 선배는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었다. 말할 거 없으면 간다. 이런 류의 말을 하며 뒤를 돌아 나가려고 하는 선배에 다급해진 탓인지 그제야 입이 열렸다.

‘선배는 절 왜 그렇게 싫어해요?’

나에게서 등을 돌린 몸이 다시 돌아갔다. 나를 쳐다본 선배의 표정은 뭔가 묘했다. 어이없다는 듯 찡그리는 것 같으면서도 체념 같은 것도 더한 식어버린 표정.

‘싫어하는 데 이유가 필요해?’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선배의 표정은 가시 돋은 말과는 달리 꽤나 상처받은 듯한 표정이었는데 당시의 나는 이미 선배의 문장에 어이와 이성을 잃고 흥분한 터라 그걸 알아보지 못했다. 한 번 든 억울함이 속절없이 밀려와 그 감정을 마구 쏟아냈었다. 이유도 없이 사람을 싫어할 수가 있는 거였냐며. 왜 나한테만 모질고 나한테만 차갑냐며.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선배밖에는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싫어서 매번 이리 짜증인 거냐며. 같은 의미의 말이라도 전하는 방법에 따라 와닿는 느낌이 아주 다른데, 그때의 나는 그런 걸 고려할 정신도, 애초에 그럴 마음도 없었다. 참을 대로 참아왔다 생각했고 선배도 나를 저렇게 막 대하는데 아무렴 무슨 상관인가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이제와 돌아보면 그때의 김민규는 참 철없고 어렸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내 말투부터가 평소보다 날카로우니 돌아오는 선배의 답도 비슷했다. 시발, 존나, 개새끼가, 꺼져, 뭐 그런 상스러운 단어란 단어는 다 붙은 문장들을 답으로 돌려줬는데 요지는 마지막에 있었다.

 

시발 니가 기억을 못 하잖아.

 

 

 

 

 

 

소란스러움에 들어있던 얕은 잠에서 깨었다. 맞지도 않는 몸을 소파에 맞춰 구겨 넣었더니 몸 어느 곳 하나 쑤시지 않은 데가 없었다. 소란이 이는 곳으로 발걸음을 하니 허, 하는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어느새 찾아낸 건지 그렇게 좋아서 죽고 못 살던 호랑이가 떡하니 박혀있는 시리얼 상자를 한 품에 꼭 껴안고는 냉장고에서 꺼내었을 우유를 한가득 들이부은 그릇에 시리얼을 리필 중이었다. 몇 년 만에 찾아온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어제 아침에도 비슷한 차림새로 있었던 사람마냥 굴었다. 뻔뻔함이라는 게 옮을 수도 있는 거였나. 정말 어제도 그제도 함께 있었던 것만 같은 익숙함 때문인지. 나도 일상의 대화를 꺼냈다.

“저기요 아저씨. 우유를 부었으면 다시 냉장고에 넣어놓으셔야죠.”

“아이 민규야, 넌 뭔 아침부터 잔소리를 이렇게... 너도 먹으라고 안 넣어놓은 거지. 내 넓은 아량을 이해를 못 해주네 김민규.”

“어련하시겠어요.”

침대를 잃은 주인은 소파에 큰 몸 구겨 끙끙대는 동안 저는 그 침대에서 아주 끝내주는 잠이라도 청했는지 하얗고 뽀얀 얼굴이 둥글둥글 달덩이처럼 부어있다. 이렇게 보니 그때의 권순영과 다를 게 하나가 없었다. 철없고 애 같고 귀여운 그런 것들. 얼굴이 부으니 눈이 위아래 살에 파묻혀 뜬 건지 안 뜬 건지 분간도 안 됐다. 그게 어이가 없어서 픽 웃으니 “너 또 나 눈 안 뜬 거 같다고 생각했지!” 역정을 내는 권순영이다. 하여튼 그 호랑이의 감이라는 건 속이지도 못해요.

“야, 너도 얼굴 부으면 무슨 못난이 감자 같애. 나한테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다 너?”

“그래도 눈을 뜬 건지 아닌지 정도는 분간되잖아? 형이랑은 다르게.”

허, 참나. 실처럼 가늘게 뜨인 눈구멍인데 째려보는 거 하나는 정확히 보인다. 온 얼굴을 열심히 구겨가며 째려보다가 손만 움직여 입에 시리얼 한 수저를 쑤셔 넣고는 우걱우걱 씹어댄다. 아이고 무서워라. 나를 그렇게 씹어먹고 싶다는 뜻? 정확해. “어디 한 번 먹어보시던가.” 하며 손을 입가로 갖다 대니 씹고 있던 시리얼을 있는 힘껏 목 뒤로 넘기더니 손가락을 앙 문다. 진짜 호랑이냐 니가. 입가엔 입안으로 다 넣지도 못하고 옆으로 새어 흐른 우유 방울이 있었다. 애야 애 아주. 투덜거리며 입가를 손으로 투박하게 쓸었다. 그러니 뭐가 그리 좋은지 아까보다 조금 더 뜨인 눈을 접어가며 웃는다. 접히는 눈이 얇은 초승달 같다. 좋냐. 웅.

 

 

 

 

 

 

그날 나는 선배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물론 선배가 시킨 건 아니었고 온전히 내 자의로. 그래야 할 타이밍이었다.

선배가 짜증 나고 자존심 상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하며 겨우 말해주기 시작한 이야기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선배의 다섯 살, 나의 네 살 때의 이야기였다.

 

네 살 때나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던 성격의 김민규는 동네 온갖 놀이터를 영위하며 동네 모든 또래 아이들과 친구를 먹고 다녔었다. 그렇게 그 동네에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확신할 때쯤 내 눈앞에 모래밭 끄트머리에서 조용히 쭈그려 앉아 바닥을 만지작대는 아이가 들어섰다. 처음 보는 애였다. 당연지사로 저 아이도 나의 친구로 만들어야겠다 다짐한 네 살짜리 김민규는 곧장 아이에게 다가섰다. 

‘너 뭐해?’

갑작스레 걸어온 말에도 별다른 반응도 없이 그 애는 조용히 대답했었다.

‘그림 그려.’

‘그림? 무슨 그림?’

‘보면 알잖아.’

그때도 여간 새침한 게 아니던 다섯 살 권순영의 답변이었다. 그 기세에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 쫄았지만, 그리 새침하게 굴수록 호기심 많은 아이를 더 자극할 뿐이었다. 그 옆에 더 찰싹 붙어 우와, 이거 호랑이야? 이건 별님이네? 하고 있으니 권순영은 몸을 옆으로 슬쩍 떼어냈다. 물론 나는 다시 가 자석처럼 붙었지만. 몇 번 몸을 떼어내다 비로소 포기한 듯한 권순영은 조그만 입술로 하휴. 하는 한숨을 쉬며 다시 나뭇가지로 모랫바닥에 그림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권순영의 앞에 놓인 바닥에는 온통 별이 천지였다. 자기를 닮아 눈을 일직선으로 찍찍 그어놓은 호랑이 한 마리를 제외하면 온통 행성과 지구와 별로 가득한 그림판이었다.

‘별을 좋아해?’

‘응.’

‘왜?’

‘예쁘잖아.’

‘그럼 나도 좋아해 봐. 나도 예쁜데.’

‘뭐래.’

모래를 가르던 나뭇가지가 내 머리에 탁하고 부딪혔다. 아야.

‘왜 때리냐.’

‘너는 뭔데 반말이냐.’

‘너 몇 살인데! 키도 내가 더 크겠구만.’

‘다섯 살.’

‘아.’

‘너는.’

‘...네 살.’

‘형이라고 해라.’

‘응...’

꿋꿋이 권순영의 옆에 붙어있던 나는 기어코 권순영을 집에 데리고 오는 데까지 성공했다. 다섯 살 권순영은 투덜대는 소리를 해대면서도 내가 손을 잡아 이끄는 대로 곧잘 따라왔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 방에 야광별 짱 많아!’ 그렇게 꼬신 게 한몫한 것 같긴 하지만.

친구는 많았지만, 친구들을 집에 들여온 적은 거의 없었던 터라 엄마는 웬일이냐며 권순영을 귀빈 모시듯 극진히 대접했다. 나한테는 잘만 틱틱대던 권순영은 엄마 앞에선 순한 양이 되어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말을 했다. 순영아, 어머니께 연락은 드렸니? 그 말에 잠시 당황하다 뒤늦게 네, 드렸어요. 그렇게 이야기한 것을 제외하면 대답도 이야기도 야무지게 했었다.

네 살짜리 다섯 살짜리가 아무리 늦게 자봤자 여덟 시 정도였으므로 엄마가 저녁으로 차려주신 김치찌개를 밥 한 공기와 비운 권순영과 두 공기와 비운 나는 거실에서 조금 놀다가 금방 잘 준비를 마치고 바닥에 깐 이불에 나란히 누웠다. 침대에서 둘이 자기엔 한 명이 굴러떨어질까 봐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우리 민규, 순영이, 잘 자.’

밤 인사를 해주고 불은 끄고 나가는 엄마에게 ‘응 엄마도 잘 자!’ ‘안녕히 주무세요.’ 각각 인사를 한 둘은 그제야 방안을 밝힌 천장을 올려다봤다. 야광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천장에는 사실 야광 별보다는 야광 공룡과 자동차가 더 많긴 했지만 있는 건 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냥 대충 보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같으니까. 깐깐한 권순영이 야광별은 어디 있냐 투덜대면 그렇게 말을 해주려 미리 변명을 생각해 놓고 있었던 것 같다.

‘야. 저렇게 많이 붙여 놓으면 안 밝냐. 잠은 오겠어?’

‘잠 엄청 잘 오는데. 쿨쿨.’

드르렁 코를 고는 시늉을 하자 옆에서 권순영을 절레절레 고개를 저어댔다. 네 살짜리 김민규가 봤을 때, 권순영은 다섯 살치고는 되게 어른 같았다. 호랑이를 좋아하고 별을 좋아하는 것 빼고는 말하고 행동하는 게 그랬다. 어쩌면 엄마보다도 더 어른 같이 이야기하는 것도 같았었다.

권순영은 내 옆에 누워 조용히 천장을 바라봤고 그 옆에서 나는 입을 담당했다. 응. 어쩌라고. 그래. 어. 짤막하고 무뚝뚝한 반응을 중간중간에 끼워 넣은 것 빼고는 방안을 울리는 목소리의 9할은 나의 것이었다. 그렇게 오늘 있었던 일부터 엄마 아빠 얘기, 할머니네 강아지 얘기, 내가 좋아하는 공룡 얘기, 별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잠기운이 몰려왔다. 

‘허엉... 나 졸리다.’

‘그럼 조용히 하고 자.’

잠기운에 푹 빠진 우물대는 목소리로 이야기 한 나에게 권순영은 조용히 하고 얼른 자라며 이불을 내 얼굴 위까지 덮어버렸다. 이미 노곤하게 잠이 스며든 몸은 그걸 내칠 생각도 못 한 채 그대로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이 들기 직전, 어느 비몽사몽한 간에, 옆에서 권순영의 목소리가 작게 울렸다.

하지만 그 밤 중에 들었던 권순영의 문장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여태도 알 길이 없었다.

 

 

 

 

 

 

권순영은 아주 평탄한 나날을 보냈다. 몇 년 만에 만난 나에게도 일말의 거리낌 없이 다섯 살, 혹은 고등학생의 권순영처럼 여전히 못살게 굴었다. 하루아침에 동거인을 주워버린 나는―집안일이라고는 손끝 하나 까딱 않는 권순영 덕분에―두 명분의 집안일을 도맡게 되었다.

내가 학교에 가거나 약속을 나갈 때면 권순영이 도대체 집에서 혼자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집에서 꼼짝도 않고 빈둥빈둥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는 것 같긴 했다. 직장에 끝내주는 휴가라도 내고 왔나. 퇴사라도 했나. 아님 백수인 건가. 대학은 어딜 나왔는지, 대학에 가기는 했는지, 그동안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살았는지도 모를 권순영의 지난 시간들에 대해 떠올려봤다. 사실 그런 건 나에게 아무렴 상관없긴 했다. 백수 권순영이 자긴 놀고먹을 거라며 우리 집에 눌어붙겠다 한들 난 그런 형을 기꺼이 내 집에서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호의호식할 수 있도록 해줄 의향이 있었으니까.

권순영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지만, 나한텐 내 눈앞에 나타난 권순영이 신기하면서도 너무 그리웠고 좋아서 할 수 있는 한 옆에서 같이 있는 쪽을 택했다. 언제 또 내 눈앞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작은 걱정도 그 선택에 이바지했을 거다. 함께 있으면서 딱히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없었지만 그런대로 좋았다. 권순영과 보내는 시간이라는 데에서 나에겐 아주 큰 의미였으니까. 

권순영이 사라졌던 시간 속의 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묻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 쪽인 게 맞는 것 같아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간 말해주겠지 싶은 마음으로.

 

 

 

 

 

그 이후로 우리의 관계엔 아주 큰 발전이 있었다. 물론 내가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댄 게 우리의 관계 개선에 아주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형도 나한테 여태 그런 식으로 대했던 게 나름 신경이 쓰이긴 했는지 유독 더 신경을 써주는 것 같았다. 물론 그 말투가 어디 가진 않았다. 나에게는 여전히 틱틱대는 말투만 줄곧 써대는 형이었지만 그런대로 좋았다. 형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므로 그 정도의 차별점은 되려 특별함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대외적으로 신경을 써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린 학교 밖에서도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친구도 인맥도 좋다고만 여겨왔던 형은 생각보다 학교 밖의 놀 거리에 익숙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딘갈 끌고 가면 ‘나 그거 처음 해보는데.’ ‘나 그거 할 줄 몰라.’ 그렇게 대답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것도 그런대로 좋았다. 남들이 모르는 형의 엉뚱하고 어리숙한 모습들을 나만 알게 되는 것 같기도 했고, 내가 형의 많은 것의 처음일 거라는 생각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형을 더 열심히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던 것 같다. 밤 열두 시가 넘어서 보는 심야 영화도, 옆에 딸린 오락실도, 조금 더 번화가로 나가면 나오는 사격장에도. 여태 나에게 재밌고 행복한 기억을 티끌만큼이라도 남겨준 곳에는 전부 형을 끌고 다녔었던 것 같다.

‘오늘 어땠어. 재밌었지?’ 그렇게 물어보면,

‘그냥 뭐, 나쁘지 않았어.’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차마 숨기지 못하는 옅은 미소를 보는 게 그렇게도 좋아서.

 

한 번은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형, 권순영, 내가 그걸 기억 못 하는 게 왜 그렇게 짜증 났어? 그냥 와서 말해줬으면 바로 기억났을 텐데. 그냥 형이 너무 많이 커져서 못 알아본 거지 형을 아예 잊어버린 것도 아니었는데.’

질문하는 나를 형은 오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였고 곧 나를 매번 바라보는 진저리 치는 표정이 금세 얼굴에 띄었다.

‘그냥 기분이 더럽던데? 너라서 그랬나. 재수 없어서.’

대답하는 말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건 그때도 금방 알아차렸었다. 그렇다고 내가 물고 늘어져 더 물어본다 한들 대답할 기세는 아니어서 그냥 그러고 말았다. 손가락으로 형의 이마를 쿡 밀면서 

‘권순영 아주 나만 싫어하지 나만.’ 그렇게 별 것 아닌 듯 장난으로 돌아가며.

 

 

 

 

 

 

권순영은 아주 뻔뻔하게 내 침대를 차지하고는 돌려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대신 이불 몇 겹을 방에 깔아주는 아량 정도는 베풀어주셨다. 그냥 소파에서 잔다고 하니 구부러진 등 더 굽는다며 그건 안된다더라. 침대 내놓을 것도 아니면서 말만 아주. 그래도 뭐가 되었든 권순영을 거절할 수 없는 나인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기에 더는 반항하지 않고 분부대로 여러 겹 깔아 폭신해진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깊은 밤,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하던 방안에 누군가와 함께 잠을 청하는 건 꽤 행복한 일이었다. 물론 사람이 있어서 불편한 면도 존재했지만 그를 충분히 능가할 정도로 그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까만 밤 중이 누군가와 함께라서 그리 어둡지는 않아서. 그리 쓸쓸하지도 않아서. 무엇보다 그 사람이 권순영이라서.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연애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미 중학교 때부터 다분히 고백을 받아왔던 터라 호기심에, 적당한 호감에 시작해본 연애는 여럿이었다. 하지만 그 연애 중 무엇도 내 기억에 그리 오래 남지 못했다. 다들 첫사랑이 그렇게 애틋하고 평생을 남는다던데, 나는 처음으로 사귀어본 여자애를 생각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좋은 애였지. 이름이 이랬지. 딱 그 정도. 걔와 함께 보냈던 시간 중 특별히 뇌리에 박히는 기억도, 그랬던 감정도 없었다. 그래서 그때 생각했었다. 나는 아직 첫사랑을 겪지 못한 것이라고. 남들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수년이 지나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가득한. 애틋하고 가끔은 생각하면 눈물 난다는. 딱 한 번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거라는. 그런 소중하고 찬란한 첫사랑 같은 거. 

 

 

 

 

 

 

지금 이 시점에서 나와 권순영은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세상에 우리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 같은 건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나마 비슷한 무언갈 골라오자면, 애매한 사이.

한쪽에선 다른 한쪽을 아주 그려왔고, 다른 쪽은 나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시시콜콜한 농담도 편히 나눌 수 있지만 그래서 저 마음속에 박힌 깊은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는. 묻고 싶은 건 많지만 우리가 그렇게 해도 되는 사이인가부터 생각하면 잠시 멈칫하게 되는. 그 질문을 꺼내지 않는 것이 지금의 관계라도 유지해 갈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인 듯해 결국 포기하고 마는. 숨기는 게 너무 많지만, 상대가 ‘그’ 사람이라서 말 꺼내기를 망설이는. 그걸 전부 모른 척하고 싶어 양쪽 모두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 괜찮다는 듯, 방싯방싯 웃어대는. 한쪽은 몇 년 동안 그 목소리조차 잊지 않고 그 감정까지 고스란히 지켜온 절절한 사랑을 하는 중이지만 다른 한쪽은 어떤 입장인지 통 알 수가 없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언젠가에 한 사람은 고백을 건넸고 다른 한 사람은 그걸 뻥 차버린. 그런 애매한 사이.

 

 

 

 

 

 

그냥 언젠가부터 느꼈던 것 같다. 나한테만 틱틱대는 형의 행동조차 특별함이라고 여겨 기꺼워하던 때, 형의 방긋 웃는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 뭐든 해주고 싶어지던 때, 그 얼굴을 지켜주기 위해서 평생이고 곁에서 광대 짓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버린 때. 나는 이미 형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형이 나의 첫사랑의 정의가 되어버리리라는 걸.

순순히 내 감정을 받아드렸다. 형이 남자라서, 숨기는 게 꽤 많은 사람이라서, 그런 것들은 내 감정을 인정하는 데에 어떠한 영향도 주었던 것 같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따져 뭐하나 싶었고, 그렇게 해야만 모두가 인정하는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다 한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느끼는 대로 사랑하고 싶었고 그런 마음으로 형의 곁에 있고 싶었다.

내 마음을 자각한 이후로 형에게 더 마음을 다해 대했던 것 같다. 보고 싶은 만큼 불러내고, 표현하고 싶은 만큼 표현하고, 잘해주고 싶은 만큼 잘해주고. 그게 내가 사랑에 임하는 방식이었다. 뒷걸음질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 처음엔 달라진 듯한 내 모습에 당황한 듯하던 형도 어느새 그 애정에 스며들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론 그랬다. 건네는 손길을 내치치도 않았고, 다가갈수록 마음을 조금씩 더 열고, 더 밝게 웃어주는 것도 같았다. 가끔은 먼저 손을 건네주는 일도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생각했던 것 같다. 아, 이 감정은 어쩌면 일방이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쌍방일 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의 사심이 들어간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너무 섣불리 다가가진 않았고 그 이후로도 끊임없는 애정을 차근히 건넸다.

그리고 나의 자취방에 누워 모처럼 창 밖의 별빛들을 구경하던 날. 유독 형의 미소가 별빛처럼 밝아 보이던 날.

‘형.’

‘응?’

‘좋아해.’

‘...’

차분하고 고요한 고백이었다. 아주아주 떨릴 거라 생각했던 심장은 웬일인지 방 안의 공기만큼 차분하고 고요하게 쿵. 쿵. 하고 울렸다. 오래도록 정적이 이어졌다. 그 정적이 그리 떨리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되려 그것마저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건네는 방법인 것 같아 차분히 기다릴 뿐이었다. 방에 난 것 치곤 꽤 크게 난 창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형의 옆에 나란히 앉아 조용히 고요를 만끽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 부스럭거리는 침구류의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한 치 앞에 형이 다가와 있었다. 형은 아무 말도 없이 내 입술 위로 저의 입술을 얹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입술이었다. 몸을 전부 돌려 형을 마주했다. 입술이 맞붙은 채로 우린 오래도록 눈을 맞췄다. 형의 눈 안에 담긴 감정이 뭔지. 그건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안에 가득 담긴 창 너머의 수많은 별이 보일 뿐이었다.

내 목 뒤로 먼저 팔이 감겼다. 허리에 팔을 둘러 형의 몸을 내 앞으로 당겨왔다. 얹은 채 움직이지 않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서로 머금고 깨물고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혀를 엮으며 서로의 입을 탐했다. 둘만 있는 고요한 공간을 낯간지러운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이불의 소리만이 가득 메웠다. 오래도록 서로를 꽉 붙든 채 숨을 오고 갔다. 넘어가는 숨이, 타액이 누구의 것인지도 알 수 없을 때까지, 차오르는 숨에 정신이 몽롱해질 때까지 서로를 놓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그리도 숨기는 게 많던 형의 감정을 전부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의 말 없이도 느낄 수 있었다. 단 하나의 거짓도 숨김도 없는 사랑의 감정이었다. 

그날 밤엔 형을 꽉 껴안고 잠들었다. 내 안을 가득 채우는 형의 따끈한 체온을 전부 느끼며 아주 달고 포근한 잠에 깊게 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형은 사라졌다.

 

 

 

 

 

 

“권순영, 이것 봐. 내가 뭐 사 왔게?”

권순영의 앞에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건네며 물었다. 권순영은 의중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 봉지에 손을 가져갔다. 권순영의 손이 몇 뭉치의 야광 스티커를 쥐고 봉투를 빠져나왔다.

“이게 뭐냐...?”

“너 예전에 이거 좋아했잖아. 별. 아니야?”

“참나, 내가 지금 다섯 살이니?”

“됐어. 싫음 말어. 내가 좋아하니까 붙일 거야.”

삐진 척을 하며 고개를 홱 돌리니 앞에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드르륵 의자가 밀려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콩콩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야, 김민규. 어느 새에 들어갔는지 내 방안에 이미 들어선 권순영이 방 벽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나를 불렀다. 

“안 붙일 거면 말아라- 나 혼자 다 붙이지 뭐.”

스티커 뭉치가 조그만 손에 들린 채 팔랑팔랑 흔들렸다. 피식 웃음이 새었다. 권순영 딱 기다려. 내가 사 온 거잖아. 내가 다 붙일 거야.

 

 

 

 

 

 

갑작스레 찾아온 공허한 주말을 보내고 학교에 찾아가 형의 행방을 물었다.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형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자퇴한다고 하고 갔어. 순영이가 도대체 왜 그랬나 몰라. 돌아오는 대답은 그뿐이었다.

형에게 전화하고 문자를 남기는 것도 그만두었다.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형은 지금 내 앞에 절대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걸. 하룻밤을 우리 집에서 묵은 다음 날 아침,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뒤로 다시는 만날 수 없던 다섯 살 꼬마처럼.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처음으로 권순영이 내가 저의 옆에 눕게 해준 거였다. 오후에 함께 옥신각신 붙인 야광 스티커가 천장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방안에 어슴푸레 드는 바깥의 별빛이 여느 때보다도 밝았다.

“우리 완전 초딩 같다 그지.”

“야광 스티커 붙여 놓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구경하고 있는 성인 남자 둘이라니. 꽤 징그러운데.”

“왜애, 좋잖아. 안 그래?”

“...그냥, 뭐.”

고요한 정적이 이어졌다. 언젠가의 밤과 비슷한 대기였다.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보니 여전히 천장에 붙은 야광별들을 바라보는 권순영의 얼굴에 별빛이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별이 좋다더니, 별도 저를 좋아하는 사람은 참 잘 찾나보다 싶었다. 그렇게 권순영은 천장의 야광별을, 나는 그런 권순영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있지 민규야.”

정적을 깬 건 권순영의 나긋한 목소리였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듯한 따스함과 발광이 담긴 목소리였다.

“별은 진짜 외로울 거야. 우리가 볼 땐 저 별이 그냥 하늘에 떠 있는 반짝이는 물체 정도일 테지만 사실 별은 지구의 저 멀리에 홀로 발광하는 거잖아. 온기도 공기도 사랑도 없는 넓고 깜깜한 우주에서 혼자 저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거야. 별이 저렇게 열심히 빛을 내는 이유는 아마도 알아달라고 애를 쓰는 게 아닐까. 나 여기 있다고. 나를 알아봐달라고.”

“...”

“사랑이 너무 좋지만 그래서 너무 무서운 거야. 그래서 알아달라 저렇게 발광하면서도 곁에 다가올 수는 없게 아주아주 뜨겁게 열을 뿜는 거지. 누군가 자신을 사랑으로 껴안아 버리면 펑 하고 터져버릴까 봐. 그게 무서워서. 별은 너무 오랜 시간을 혼자 우주에서 보냈으니까. 혼자가 싫고 사랑이 고프면서도 그 사랑이 너무 가까워지고 넘쳐 흐르면 어색하고 두려워서 도망쳐 버리는 거야. 그래서 별은 아마 지구를 사랑할 거야. 인간들을 사랑할 거야. 지구의 인간들은 무한한 거리에 떨어진 별을 경외하기도 애정하기도 하면서 꾸준히 열렬히 관심을 주고 관찰해주니까. 이름을 붙여주며 끊임없이 기억하려고 노력하니까. 별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런 인간의 애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조금이나마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을 간절히 찾는 이의 소원을 이루어준다거나 하는 게 아닐까.”

권순영은 말을 이었다.

“사람이 별을 사랑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별은 사람을 사랑할 거야. 아직 다가가기 무섭고 그 품에 저를 맡기기는 두렵지만, 온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있을 거야. 그래서 저 별빛을 열심히 뿌려대는 거야. 나 아직 여기 있다고.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고. 그러니까 나를 계속해서 불러주고 기억해 달라고. 잊지 말아 달라고.”

권순영의 말은 비유적이었고 무질서했고 장황했다. 우주나 별 같은 것에 관심을 가져본 적 없던 나로서는 그 말들을 아주 완벽히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기도 했다. 별을 무언가를 사랑하는 생명체로 바라봐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알 수 있었던 건, ‘별’과 ‘권순영’은 치환 가능하다는 거. 하나도 닮지 않은 두 단어가 그 문장들 안에서는 완벽히 같은 의미였다는 거. 새하얗게 물들인 머리카락으로 빛을 반짝반짝 내뿜는 권순영은 저 하늘의 별과 같다는 거.

“민규야.”

“응, 순영아.”

“너는 별을 사랑해?”

“그럼. 당연하지. 평생을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사랑할 거지. 태양 빛에 가려져서 가끔은 안 보여도 저 하늘에 여전히 떠 있다는 건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별이 나를 사랑해주는 만큼 나도 별을 사랑하지.”

“...”

“그래서, 별이 다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려고. 사람의 품에 가득 안겨서 그 사랑을 듬뿍 받아도 더는 두렵지 않고 무섭지 않을 때까지. 외로움 같은 건 다 잊어버리고 함께 있는 상태가 더 익숙하고 당연해질 때까지. 며칠이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기다릴 수 있어. 그만큼 별을 사랑하니까.”

“얼마가 걸릴진 몰라도 분명히 준비될 거야. 별은 그럴 수 있을 거야.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니까.”

“응. 알아. 그래서 기다리려고. 기억하려고. 그리고,”

“...”

“...사랑하려고.”

권순영은 말없이 내 품을 파고들었다. 새하얀 머리칼이 야광별의 빛을, 하늘의 별빛을 반사해 발광했다. 열렬히 빛을 내는 머리카락을 차분히 쓰다듬었다. 손길에 따라 숨이 점점 규칙적으로 흘렀다. 뜨겁게 열을 내는 몸을 안고 나도 눈을 감았다. 하늘을 가득 채운 별과 함께여서 더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밤이었다.

 

 

 

아침이 고요했다. 품을 채우던 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지도 문자를 남기지도 않았다. 무섭지 않았고 두렵지 않았다. 별은 언제나 하늘에 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은 사랑의 곁으로 돌아올 것을 아니까. 별빛이 무성한 어느 날 밤, 똑똑 현관문을 두드리고.

 

 

 

 

 

 

 

 

 

 

허엉... 나 졸리다.

그럼 조용히 하고 자.

으응...

...

...

...

...

...별은 외로워서 좋아.

...

그래도 멀리 떨어진 누군가가 이름을 붙여주고 기억해 줘서 좋아.

...

그러니까 너도 나 기억해. 꼭.